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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17. 2023

#_당신은 '현재'에 살고 있나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어떤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재를 누리지 못합니다.


죄책감이란 과거 속에서 헤매는 상태이고,
불안이란 미래 속에서 헤매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켄 윌버는 <무경계>에서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태를 위와 같이 기술합니다.

저 역시 살아오며 많은 잘못과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데도 그 과거의 어떤 일들이 끊임없이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의식 중에 남은 죄책감이 자신을 과거의 감옥 속에 가두고 맙니다. 반대로 그런 불편함을 상쇄시킬만한 막연한 핑크빛 미래를 꿈꾸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노력 없이 그저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복권에 당첨되고 싶다는 식의 생각입니다. 역시 현재의 불안이 미래로 투영되어 헤매고 있는 상태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실재하지 않을 미래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결과적으로 현재를 상실하게 만들 뿐이지요.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가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매 순간의 의사결정이 영원히 반복되고, 그만큼 현재를 온전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개념이죠. 저는 니체의 그 말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었는데, 켄 윌버의 책을 읽으며 그 말의 참 뜻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듯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다음 구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낀 샌드위치가 되어 모든 면에서 제한된다. 현재는 한정되고, 담으로 둘러싸이고, 제한된다. 열린 순간이 아니라 짓눌린 순간, 압착된 순간, 즉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덧없는 순간이 된다. 과거와 미래가 너무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샌드위치 속의 고기인 현재의 순간은 단지 얇은 종잇조각처럼 축소되고 우리의 실재는 이내 내용물 없는 두 조각의 빵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기억으로서의 과거가 언제나 현재경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뒤쪽'에 있는 경계는 무너진다. 지금 이 순간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마찬가지로, 예견으로서의 미래가 언제나 현재경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앞쪽'에 있는 경계도 사라져 버린다. 앞뒤로 우리를 짓누르는 듯했던 무게 전체가 순식간에 갑자기, 그리고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더 이상 가두어진 순간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채울 만큼 확장된다. 그리하여 '스쳐가는' 현재가 '영원한 현재'로 펼쳐진다. …… 이런 영원한 현재, 눙크 스탄스가 바로 무경계 순간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느끼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껴있는'스쳐가는 현재'입니다. 하지만 과거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현재경험의 일부일 뿐입니다. 반대로 미래라는 것도 우리가 추측하는 예견으로써의 현재경험일 뿐이죠. 결국 그의 말처럼 내 삶에 개념적으로 세워둔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개의 커다란 벽을 넘어뜨릴 수 있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가 가지게 되는 '현재'는 어떤 경계도 없는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책에 소개된 <육조단경>의 한 구절을 추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순간에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존재하기를 멈추는 것도 없다. 고로, 종말을 초래할 탄생과 죽음이란 없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은 절대적인 평화이다. 그것은 이 순간에 있지만, 이 순간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 여기엔 영원한 기쁨만이 있을 뿐이다.


현재는 영어로 present입니다. '현재'라는 뜻 외에 '선물'이란 뜻도 가지고 있지요. 그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낀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을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현재가 선물인 이유는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이 아닌 우리의 삶과 존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역사선생님인데, 역사수업시간에 물리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요? 또 당당하게 게임을 하고 있는 친구를 어떻게 타일러줘야 할까요? 학교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수는 있으나 적어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진 않을텐데 말이죠. 우리 인생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라는 수업시간에 당연한듯이 다른 과목(과거, 미래)을 공부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잡지책(내가 아닌 타인의 기준)을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성적(행복)은 높기를 바랍니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짧은 시간조차 마음의 조급함과 불안함 속에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바쁘다는 것(忙 : 바쁠 망)은 마음(心)을 잃어버렸다(亡)는 뜻입니다. 우리가 버릇처럼 바쁘다고 말하는 것은 늘 내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뜻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상태로는 현재를 살 수 없습니다.


제가 느낀 감상을 공유하기 위해 조금 더 비유로 설명해 볼까 합니다.

제인은 엄청나게 큰 대저택에 와 있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 매달 세를 내면서 사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제인 역시 그 집에 머물고는 있지만, 내야 할 세가 부족해서 늘 바쁘게 일을 하러 돌아다녀야만 했지요.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한 결과 제인은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집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누군가 제인의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대저택을 관리하는 총지배인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인님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수십 년간 매일 찾아다녔지만, 계시지 않아서 이 편지를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문서이니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지요." 그가 건넨 편지를 열어보니 그 저택의 소유가 제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의 문서였습니다. 제인은 이 모든 집의 소유가 자기 것인 줄도 모르고 평생 이 집에 머물기 위한 세를 내기 위해 일하러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현재란 단칸방이 아니라, 대저택입니다. 현재란 삶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잃어버리면 결코 나에게 주어지는 대저택의 집문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위의 예시처럼 선물은 도착했는데 집에 주인이 없는 상황이지요.


당신은 왜 그토록 바쁜 건가요?

더 행복해지기 위해 더 바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당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게 정작 두려운 건 아닌가요?

 

맞아요. 저는 제인에게 집문서를 건네준 집사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대저택을 선물해 드리는 게 아니지만, 저는 그 집에 원래 당신의 것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멈춰서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나는 현재라는 대저택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는지 말이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입니다.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은 켄 윌버의 <무경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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