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관성에 대하여
얼마 전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버스에 타고서는 기사님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기사님, 이 버스 보문동 가죠?"
버스는 이미 출발한 상태였는데, 기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버스는 강남 쪽으로 가는 버스예요. 보문동은 안 가요"
그러면서 어떻게 보문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되는지 기사님이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아주머니의 태도였습니다.
"그냥 좀 타고 가다가 갈아타면 안돼요?"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기사님은 당황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아주머니 방향이 이쪽이 아니라고요. 내리셔서 다른 버스를 다시 타셔야 해요."
그러고는 그 근처에 다른 버스 정류장에 세워서 아주머니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내릴 때도 뭔가 아쉬운 듯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잠시의 소란이 끝난 후에 버스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내린 후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보문동은 그 버스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길 건너서 반대방향 버스를 탄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죠. 정확하게 가는 길을 알아보고 가야 하는 곳이었던 겁니다.
잘못된 버스를 탔음에도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내리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어쩌면 우리들은 내가 원하는 곳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의 시작은 내가 정한 게 아니기에 우리는 각자 다른 유년시절이라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을 겁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타고 가는 버스가 진작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걸 알고 도중에 내리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지금까지 타고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별 뜻 없이 타고 가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요?
쉬나 아이엔가가 쓴 <쉬나의 선택실험실>에서 우리 인간이 가진 일관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 대한 일관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중략)
일관성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영위할 것인지 결정할 때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도 '일관성의 법칙'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사람의 마음도 뉴턴이 말한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그것도 물리학의 세상보다 훨씬 강력하게 말이죠.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
관성의 법칙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인생의 큰 사고나 환경의 변화로 인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사례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한 버스의 비유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면,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난 셈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런 변화 속에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게 되는 스토리였던 것이죠.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인생은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라고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삶의 관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는 어떤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또 어떤 버스를 갈아타고 싶은지도. 어쩌면 우리가 갈아타야 하는 건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나 자가용인지도 모릅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렸으니 다시 버스를 타야만 한다는 생각조차 타성일지 모릅니다.
버스가 공항에 내렸다면, 거기서는 비행기로 갈아타고 저 하늘 위로 날아올라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