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May 05. 2023

#_맛있는 오마카세 '지식' 한 접시 드세요

맛있는 걸 먹는 건 참 쉽지만,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며칠 전에 아내와 함께 오마카세 일식집을 갔습니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독특한 식당이었는데요. 가격도 비싸지 않으면서도 식사도 훌륭하게 나와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두툼하게 썰린 회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밥, 그 사이를 미묘하게 연결해 주는 알맞은 고추냉이가 어우러져 초밥 하나하나가 참 맛있었습니다. 요리사분은 인원수에 맞게 순식간에 척척 만들어 내지만, 보기엔 간단해 보여도 저렇게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겁니다. 그분이 만드는 걸 보고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제가 같은 맛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의 앎이란 무척 상대적입니다. 앎의 깊이가 얕을수록 대상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합니다. 예컨대 제가 피아노 건반의 "도"음계를 치는 건 그저 "띵~"하는 하나의 소리일 뿐이겠지만, 음악을 하시는 분에게 그 "도"는 여러 화음 중 하나의 소리이자, 연주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감정을 담은 "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앎이란 깊어질수록 디테일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로 앎이 확장되다 보면 다시 단순함을 향해 수렴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제가 아무렇게나 소를 그린다고 해서 그게 작품이 되진 않지만, 피카소가 마치 몇 개의 선으로 그린 소-Bull(plate XI)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MoMA에 전시된 피카소의 "Bull (plate XI), 1946"
11번째 소가 그려지기까지의 과정


이처럼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은 더 깊이 더 어려운 지점까지 연구하고, 고민하지만, 결국에는 아주 단순한 결론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대단한 통찰일수록, 위대한 지식일수록 때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깊이 공부할수록 그 평범한 문장의 무게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맛있는 초밥을 만든 그 요리사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초밥을 맛보았을 겁니다. 회를 어떤 두께로 썰어야 하는지, 밥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고추냉이는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발견해 냈겠지요. 왕양명은 <전습록>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그대가 그 쓴 맛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스스로 오이를 먹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려면 그 일을 부단히 반복하면서 시행착오를 개선해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강의를 듣는 게 아닐까요? 반대로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강의를 들어도 내가 직접 그것을 몸으로 경험하면서 체득하지 않으면 그 지식은 그저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머리로는 참 이해하기 쉽지만, 막상 삶에서는 그 작은 진전이 참 더디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을 개선하기 위해 내키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라는 제임스 알렌의 조언이 참 와닿습니다. 저 역시 마음으로는 몇 번이나 하고도 남았을 일을 아직 시도조차 제대로 못하는 일들이 참 많기에 또 한 번 반성하게 됩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왕양명 선생은 또 이런 말로 위로를 건넵니다.


사람은 반드시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자기를 이길 수 있다. 자기를 이길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를 성취할 수 있는 법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이겨야 하고, 자기를 이기려면 먼저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나를 온전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의 태도가 나 자신을 이기는 원동력이 되고, 더 큰 성취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됨을 배웁니다. 언뜻 보면 참 당연하고 뻔한 문장이지만, 저 짧은 두 문장을 삶으로 실천해 내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새삼 느낍니다.


일식집의 요리사는 초밥을 하나씩 그릇에 올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초밥은 초생강을 간장에 살짝 찍어 곁들여드시면 더 좋습니다."


저도 함께 공부하고 글을 쓰며 함께 성장하는 당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나를 위해 잠깐의 독서와 짧은 글쓰기를 곁들여 더 풍요로운 하루를 음미해 보세요."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왕양명의 <낭독 전습록>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_연필깎기와 부자되기의 이상한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