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May 07. 2023

#_당신에겐 "천천히"가 필요합니다.

'천천히'는 내 삶의 밀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가끔 아이들을 보면 늘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서 심심해하는데, 그 시간을 용돈을 주고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로 내려갈수록 하루는 길고, 많은 시간을 "심심함"과 싸우거나 견뎌야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일도 친구들과 함께 하면 너무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그 시절에는 현재에 충실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김영하 작가는 어린 시절 유명했던 만화잡지 보물섬이 한 달 최대의 기쁨이자 구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산문집 <보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시간이 한 달 단위로 흘렀다.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가 창간된 후부터 그랬다. 한 달 내내 그 잡지가 집으로 배달되기를 기다렸다. 우체부가 두툼한 잡지를 건네주면 방에 틀어박혀 단숨에 읽어치우고는 또 한 달을 기다렸다. 인터넷은커녕 TV 신호도 잘 안 잡히는 시골에서는 잡지가 구원이었다. 시간은 무한정으로 남아도는 것이어서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귀하다. 사방에서 볼 것이 쏟아진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맹렬히 내 시간을 노리는 것들 투성이다.


그의 말처럼 이제 어른이 된 우리의 시간은 귀합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더 늘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세 이상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늘어난 삶의 시간 때문에 우리는 더 바쁘게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더 바빠지기만 하고, 여유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정확히는 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삶을 단 1초라도 살아볼 수 없기에 오직 제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바쁘다는 것(忙)은 마음(心)을 잃어버린(亡) 상태라고 말했었는데요.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현재"를 잃어버렸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 우리가 가진 것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뿐인데, 지금을 살지 않고, 과거에 매여서 살고 있거나, 미래를 불안해하며 살고 있는 것이죠. 이런 상태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삶에서 인식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소중한 이유는 인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무척이나 한정적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그 한정된 자원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물론 나이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긴 합니다.)


게리 바이너척은 어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Fast는 비즈니스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단어입니다.
내게 일어났던 모든 좋은 일들은 Slow였습니다.


전 이 말이 정말 좋고, 그가 정말 진솔한 사람임을 느낍니다. 아시다시피 빠르게 쌓은 탑은 금방 무너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에 더 빨리 나아갈 방법을 찾습니다. 마음이 조급하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심리상태의 반영입니다. 그것은 전형적으로 불안한 미래에 사로잡힌 상태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제 미래가 불안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고, 개선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앞서나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많은 책에서 그런 마음이 얼마나 잘못된 상태인지 알려주었습니다.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가짐으로 무언가 변화하고 성장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급함은 또 다른 형태의 조급함을 낳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 보니 알겠더라고요. 저를 앞서 갔던 사람들은 모두 저보다 "천천히" 행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천히 행동했다는 것은 느리지만, 꾸준히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조금 더 큰 나를 만들어 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앞서간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변화와 성장 없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천천히 보내는 시간"입니다. 천천히 호흡하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고, 천천히 대화하고, 천천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겁니다. 천천히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색하고 불안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천천히 나의 의식을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에만 집중해 보세요. 

천천히 해도 충분합니다. 천천히 해야 성장합니다. 빠른 것은 느린 것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예컨대 저는 속독을 좋아하지만, 정말 좋은 책을 만나면 정말 천천히 읽고 또 읽습니다. 빠른 검토는 느리고 신중한 검토를 위한 기초작업입니다. 빠른 만남은 더 깊고 오랜만남을 위한 안배일 테고요. 빠른 행동은 우선 시작하고 천천히 더 오랫동안 성장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단,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천천히라는 말은 애쓰지 않고 느긋하게 늘어져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할 일을 천천히 나중으로 미루라는 말도 아니고요. 가장 중요한 것을 집중하기에 "천천히" 하나하나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빠르게 해야 하고, 무엇을 느리게 해야 하는지 그 기준을 스스로 잡아야 합니다.

즉, 행동은 빠르고 천천히 해야 합니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빠르게, 하지만 행동은 천천히 신중하고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이토록 단호하고 세련된 "Slow"가 필요합니다.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김영하의 <보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_나에게 전하는 뼈 때리는 조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