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나무생각) 삶의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그 상대나 대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더 알기 위해 공부에 빠져든다. 공부에 빠지면 보이진 않았던 부분이 보인다. 그때 보이는 것은 공부하기 전에 봤던 것과는 다르다. 공부는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공부를 통해서 우리가 닦아야 될 덕목은 단편적 지식이 아니라 내 몸으로 익힌 체험적 지혜다. (p.12)
공부는 그 자체가 삶이자 목적이다. 공부하는 삶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아름다움, 즉, 나다움으로 색다름을 드러내려고 한다. 나다움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 위한 위기지학의 공부야말로 공부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p.15)
지루한 반복, 그러나 진지한 반복만이 완벽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지겹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해내려고 애쓰는 마음이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들어준다. 위대한 탄생은 지루한 반복 끝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p.27)
생각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생각하는 선순환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부의 깊이와 넓이도 심화․확산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에 머무는 생각은 아직 공부가 아니다.(p.33)
배우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주인(主人) 행세를 할 수 있다. 주인이 된 사람은 주체적 의지로 ‘어둠’을 밝혀 ‘얻음’으로 창조해낼 수 있다. 배움learn은 그래서 얻음earn이다.(p.39)
몸을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머리를 써서 기억한 지식은 오래가지 못하고 설득력도 없다. 몸이 체험하는 고통 끝에 고도의 노하우가 몸속으로 들어와 각인되는 과정이 바로 체득(體得)이자 체화(體化)다.(p.43)
공부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이면의 힘이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보이지 않는 힘이나 구조가 보이는 현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다.(p.50)
공부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운명적인 사건이다. 사건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는 비교할 수 없는 생각의 도약이 일어난다. 그래서 생각의 혁명이 일어나는 사건을 만나는 순간 나는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공부는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몰고 온다.(p.62)
물음이 있는 곳에 답도 있다. 공부를 해 색다른 깨달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어제와 다른 물음표가 살아나야 한다.(중략) 공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타성에 물음표를 던져 당연한 게 없음을 깨닫는 과정이다. 공부는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며 별다른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영역에 물음표를 던져 생각의 타성에 탄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p.71)
디폴트 세팅을 바꾸지 않고 초기 설정된 대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성향은 경로의존성(徑路依存性, path dependency)이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중략) 이처럼 과거에 의존했던 사고방식이나 경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향을 다른 말로 고착효과lick-in effect, 매너리즘mannerism, 또는 관성inertia이라고 한다.(p.95)
‘덕분(德分)에’라는 말은 ‘덕(德)’을 ‘나누어(分)’준다는 말이다. ‘때문에’라는 말은 핑계와 자기합리화를 위해 둘러대는 말이지만 ‘덕분에’라는 말은 당신이 나에게 덕을 나누어준 그 덕분에 내가 잘되었다는 말이다.(p.101)
공부는 아무리 작은 결과라고 할지라도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낸 외로운 투쟁의 산물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노력해서 만든 합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수행의 과정이다.(p.105)
공부는 정해진 길 위에서 가장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공부는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길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내거나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하는 탐구의 과정이다.(p.109)
우리가 공부를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다.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자기의 존재 이유를 알고 가장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p.114)
관점(觀點)은 시점(時點)이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을 과거에서 보는가, 현재에서 보는가, 아니면 미래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 관점은 또한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時角)이다. 보려고 하는 것만을 선택해서 보는 눈이다.(p.143)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책을 읽는다고 해도 책에서 인생의 보물을 캐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과 뚜렷한 목적의식, 그리고 간절한 문제의식 없이 대충 읽기 때문이다.(p.147)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나 원리와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면서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심화되고 확산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이다. 생각의 성장이 곧 사람의 성장이다.(p.156)
안in에서 다르게 보려면sight 밖out에서 다르게 본 것들sight이 새롭게 입력되어야 한다. 밖에서 본 체험적 자극outsight이 바뀌지 않으면 안에서 일어나는 통찰력insight도 바뀌지 않는다.(p.188)
말에 그 사람의 감정이 담겨 있듯이 글에도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이 느껴진다. 내가 쓴 글이 곧 나다.(p.199)
글 쓰는 과정은 어디까지가 내 생각인지, 지금 하는 말이나 쓰는 글이 내 육신의 고통 체험 속에서 터득한 것인지를 드러내 놓고 확인하는 과정이다.(p.209)
‘자유(自由)’는 ‘자기(自己)의 존재 이유(理由)’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래서 자유롭지 못하다.(p.236)
경이로운 진리 체험을 맛본 사람들은 맹자에 나오는 욕파불능(欲罷不能)의 상태에 이른 사람들이다. 욕파불능이란 그만두고 싶어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상태, 즉 공부하는 사람이 도달하고 싶은 궁극의 상태를 말한다.(p.243)
공부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라기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다. (p.249)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이 말은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어떤 공부를 해왔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