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를 읽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by 변대원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타인을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사실 나조차 스스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유영만 교수님의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는 우리가 만나지 말아야 할 대상에 대해 알려준다. 타인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필요할 때만 나타나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 자기 자랑만 일삼는 과시적인 사람, 감탄을 잃은 사람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직접 경험해본 유형도 있고, 이야기만 들은 유형도 있기에 공감의 크기는 저마다 달랐다. 다만 공통적인 현상은 모든 유형을 접할 때마다 마치 거울을 보듯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라고 단정 내리긴 어렵지만, 분명 상황에 따라 내가 필요한 말만 하거나 내 자랑만 일삼거나 타성에 젖어 감탄을 잃고 살았던 적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타인을 비추는 거울인 줄 알았으나 자연스럽게 나도 비추어주는 양면거울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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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여기’를 떠나 낯선 ‘저기’로 가야 합니다. p.44


본문의 이 말처럼 우리는 익숙한 '여기‘를 떠나지 않고서 새로운 ’ 저기‘에 도달할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익숙한 나를 떠나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깊이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1. 타인을 이해하되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누구를 만나 어떤 인간적 자극을 받고 살아왔는지, 어떤 체험과 각성을 통해 자신을 부단히 재탄생시키며 살아왔는지를 편견 없이 알아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일입니다. p.11

다른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복잡한 생각을 내 생각으로 재단해 버리도 하고 그 결과 생각의 다름은 차별화되지 못하고 차별을 만들어 냅니다. p.15


관계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타인을 이해했다고 믿고,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린다. 나는 어떤 사람도 내 생각보다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가 조금 배운 게 부족하다고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고, 비록 그가 이기적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에게 관대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가진 수많은 상황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수많은 상황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타인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스토리들을 공감하기 위해서 아닐까?



2. 공부할수록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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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멈춘 사람’이 위험한 이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접속해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중략) 공부하는 사람이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공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p.47


이 부분을 읽으며 왜 내가 그토록 독서에 집착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인생의 달콤한 성공만을 마냥 좇던 시절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여 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니었다. 세상의 파도는 나를 집어삼켰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였는지를. 궁금했다. 내가 모르던 세상을 더 알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사람을 만나서 배우고, 듣고, 내 생각을 나누었다. 그렇게 분명 더 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모르는 건 더 많아졌다. 아는 게 10개 늘어나면 모르는 건 30개가 늘어났다. 책을 20권쯤 읽으면 읽고 싶은 책은 50권이 넘게 쌓여갔다. 내가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같이 커져갔다. 겸손함은 노력의 결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처절한 깨달음의 결과였다.



3. 작은 일부터 빛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작은 일이라도 진심을 담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움직인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바로 위대한 성취의 숨은 비결입니다. (중략)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내 일을 사랑한다면 진심을 다하고 묵묵히 맡은 일을 완수합니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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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정판을 구입하고 받은 우공이산 액자를 바라본다.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라는 문장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가 떠오른다. 둘 다 늘 마음만 앞서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만 급급하며 살았던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준 책이다. 위대한 일은 반드시 작은 것에 깃들어 있다.


合抱之木生於毫末 九層之臺起於累土 千里之行始於足下

합포지목생어호말 구층지대기어루토, 천리지행시어족하


아름드리나무도 털끝만 한 씨앗에서 자라나고, 9층 누각도 한 줌 흙에서 시작하며, 천리 길도 첫걸음부터 시작한다는 뜻으로 노자 도덕경(道德經) 64장에 있는 문장이다. 본문의 글처럼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자신을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심을 다해 묵묵히 맡은 일을 완수한다.


“안 해도 되는 이유는 머리가 만들어 내지만 되는 방법은 몸이 만들어 냅니다.”
가슴은 정직하지만 머리는 정직하지 않습니다. 가슴은 계산하지 않지만 머리는 이해타산을 따집니다. p.105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보통 온몸으로 이유를 만들어 낸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머리로 궁색한 변명을 찾기 바쁘다. 대체로 일이 되어 갈 때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호감은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일을 발견했다면, 나에게 의미 있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싶다면 우선은 시작해 봐야 한다. “방법은 실행하기 전에 준비하는 게 아니라 실행하는 가운데 부각되는 대책(p.108)"이기 때문이다. 실패보다 무서운 것은 때를 놓치는 실기(失期)라는 말(p.108)은 깊이 가슴에 새기게 되는 문장이다.



4.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입니다. (중략) 원칙이 흔들리면 사람 사이에 불신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인정해주고 어떤 사람은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원칙이 흔들리고 반칙 사례가 나타나면서 변칙이 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p.93


이 글도 나를 돌아보게 했다. 마냥 좋은 사람처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다 보면 원칙 없이 행동하게 되고, 그런 행동들은 반드시 변칙으로 이어졌다. 원칙은 견고해야 한다. 그래야 그 원칙이라는 기둥을 믿고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당장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원칙을 지켜가야만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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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개인 혹은 집단이 딜레마에 빠지거나 결연한 결단을 내릴 때 의사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 데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중략) 예를 들어 간디에게 마지막 어휘는 ‘비폭력’이고 부처에게는 ‘자비’ 공자에게는 ‘인(仁)’입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혁신’이고, 리처드 브랜슨에게는 ‘상상’입니다. 플라톤에게는 ‘이데아’, 사르트르에게는 ‘실존’, 스피노자에게는 ‘코나투스(Conatus;노력)’, 니체에게는 ‘아모르파티(Amor Fati)’ 라캉에게는 ‘욕망’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언어’가 마지막 어휘입니다. p.110


이 부분을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어휘’라니. 그래 잊고 있었다. 몇 년 전 인생학교 수업을 진행하던 때 내가 찾았던 마지막 3개의 키워드는 “사랑, 성장, 상생”이었다. 여기서 다시 2개를 빼고 하나만 남긴다면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 혹은 다른 단어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나의 마지막 어휘는 “성장”이다.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이 사랑이고, 타인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상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매일 작은 성장을 통해 축적하는 삶을 살고자 애쓰고 있다. 책을 읽는 것도 강의를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성장’을 위한 것이다. 사이책방도 책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시작했다. 아~ 나의 심연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지켜갈 수 있을까? 깊이 반문해 보게 된다.


경험을 축적하는 사람은 삶의 속도보다 밀도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속도가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자극제라면, 밀도는 매 순간을 의미심장하게 느끼면서 살아가게 하는 완충제입니다. p.112

실력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몸으로 축적한 흔적입니다. 실력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p.159


드디어 나왔다. 경험의 축적과 삶의 밀도, 그리고 축적!

어쩜 이리도 요즘 내 고민과 맞닿아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성장을 통해 하루하루를 축적의 시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시간의 밀도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장 없는 속도는 위험할 뿐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의 속도는 삶을 나로부터 더 멀리 떨어뜨려 놓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삶의 이정표를 따라 성장하고 축적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값진 조언을 들으니 내가 걸어가는 길에 깊은 위안을 얻게 된다.



5.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식이 곧 실천을 보장한다는 믿음은 행동과 분리된 앎을 부추깁니다. 행동하려면 알아야 한다는 믿음, 실천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는 가정이 배움과 행동을 분리시켜 왔습니다. (중략) 앎과 삶이 독립적으로 선행되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삶이 곧 앎이고 앎이 곧 삶입니다. 지행(知行)은 일치(一致)의 문제가 아니라 합일(合一)의 문제입니다. p.132

진정한 앎의 근원지는 삶입니다. 삶이 앎을 만들어내는 운동장이자 놀이터입니다. 삶과 무관한 차가운 논리로 재단하는 앎은 현실 변화에 무력한 관념적인 앎일 뿐입니다. 앎이 삶을 바꿀 수 없을 때 그 존재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p.151


나는 여전히 앎과 삶이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부터 알아야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머리(앎)만 커져갔다. 이제 다시 깨닫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아니라, 삶으로 부딪혀 본 만큼 알게 된다는 사실을. 지행은 일치의 문제가 아니라 합일의 문제라는 말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제까지는 앎에 삶을 맞추려(일치) 했다면, 이제부터는 삶과 앎이 하나가 되는 삶, 삶의 우물에서 앎의 물을 길어내야 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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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대로 살아가는 메신저의 진정성이 모든 것을 압도합니다. p.197

언어의 무게는 진심의 무게입니다. 체험적 깨달음의 무게가 실린 언어에는 말할 수 없는 진심이 담깁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세월의 무게가 실린 언어에서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입이 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말에는 밑바닥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p.198


이 문장을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과 글보다 삶의 수위가 높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이나 글이 넘치면 지나친 삶이지만, 삶이 말이나 글보다 넘치면 진정한 삶이 아닐까라고.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 중에서


책에 인용된 니체의 격언처럼 시작은 위험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한다. 그가 말한 영원회귀 사상처럼 내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이라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순간은 영원하다.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여기’를 떠나 낯선 ‘저기’로 가야 합니다. p.44
혁명은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입니다. p.251
사랑만이 혁명을 완수합니다. p.250


성장을 꿈꾸던 나에게 이 책은 수많은 물음표와 더 많은 느낌표를 던져주었다. 이런 책이 좋다.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들을 구체적인 단어로 파고들어 깊은 상처를 남기는 책.

여전히 나의 삶은 내가 아는 앎에 머물러 있지만, 지금부터 조금은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책도 사람도 세상도,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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