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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Jun 23. 2023

#_글쓰기란 나의 모자란 삶을 끌어안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잘 쓰는 게 이상한 겁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문장은 숨 쉬고 있고, 단어들이 꿈틀거립니다. 문장이 이어질수록 거대한 의식의 흐름을 만들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글을 쓰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는 책들이 어떤 책이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까요? 아주 오랫동안 글쓰기가 훈련된 사람(소설가, 작가, 교수 등)의 글 아니었나요? 그런 글을 읽고 좋다고 내가 그런 글을 바로 쓸 수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닐까요? ㅎㅎ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무언가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이 미덥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저는 천천히가 좋고, 공든 탑이 좋습니다. 삶의 흐름 속에서 고민과 사색이 쌓이고, 그 사이에 여러 책과 경험들이 쌓이고, 또 시간이 흘러 그런 재료들이 뒤섞여 하나의 여정이 되는 과정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네, 그래도 빨리 글실력을 늘리고 싶다고요? 그럼요. 그 맘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수년째 그런 마음으로 살아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그런 조바심은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독서도, 글쓰기도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각자의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무늬가 다르고, 그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지금 글을 잘 못쓰는데,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들키는 게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그건 글을 잘쓰는 사람도 못쓰는 사람도 똑같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잘 못 읽는 사람일수록 독서를 우습게 여깁니다. 반대로 책을 잘 읽는 사람일수록 더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자신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글은 나와 무척이나 닮아있는데,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까지 불쑥 튀어나오니 거부감을 느껴질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독서와 글쓰기가 좋다는 걸 알지만, 무의식에서는 그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핑계를 만들어냅니다. 바쁘다. 시간이 없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다 등등

그런 마음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저도 겪었고, 누구나 겪게 되는 마음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만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어도 인생에서 작은 산 하나는 거뜬히 넘어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유독 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솔직히 드러내야 하는 일이기에 거부감이 클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모자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줍니다.


누구나 처음은 있고, 그 처음은 미숙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처음 하는 일, 익숙하지 않은 일은 서툴게 마련입니다. 그 서툼을 담담히 인정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마음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심플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지금 제 브런치 구독자가 330명입니다. 3달 전에 280명이었으니 그 사이에 50명이나 늘어난 셈입니다. 불과 3달 만에 17.8% 성장한 겁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는 구독자가 적은 게 불만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글을 올리는데, 읽어주는 사람은 너무 없었으니까요. 왜 사람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5년이나 글을 써온 채널에 구독자가 330 명인게 불만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와 진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이냐면 글을 열심히 쓸수록 제 부족함을 여실히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구독자가 많았으면 그분들이 얼마나 실망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ㅎㅎ 나는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머물러 있었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빨리 성장하고 싶다는 건 정말 미련한 욕심일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느낍니다.

내가 충분한 가치를 주고 있다면,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글, 독자분들이 원하는 글을 쓰고 있다면, 내가 욕심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게 진짜 문제 아닐까요? 제가 좋아하는 "수장선고(水長船高)"라는 말처럼 물이 깊으면 배는 절로 높이 뜨게 마련일 겁니다.


몇몇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책곰쌤의 글이 몇 달 사이에 정말 좋아지는 게 보인다고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솔직히 비슷한 것 같아요. 다만 제 속에 있는 걸 매일 꺼내다 보니 하나씩 더 체계적으로 모양이 잡힌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어쩌면 그런 체계를 갖춰가는 과정이 글이 좋아진다라고 느끼는 맥락이 아닐까 유추해보기도 합니다. 칭찬은 듣기 좋지만, 그런 말에 우쭐댈 필요도 없고, 안 좋은 말에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어쨌거나 성장하고 있다면, 더 열심히 꾸준히 노력해 나가면 될 일입니다.

물론 노력만이 전부는 아닐 겁니다. 전략도 필요하고, 저 역시 늘 고민합니다. 하지만 우선은 성장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반짝이고 스쳐가는 유행 같은 존재가 아니라, 한걸음 시대를 앞서가는 트렌드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시간들이 저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값진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 결론입니다.

처음부터 잘 쓰는 게 이상한 겁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툰 게 당연하고, 그런 부족함을 부끄러움 없이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부족함을 알고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일뿐입니다.


이다혜 작가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나긴 기억의 파편을 따라가며, 만족, 공포, 수치심 등 한 인간의 삶이 하나의 모자이크처럼 완성된다.


인생은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퍼즐이 아니라, 매번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채워 넣는 하나뿐인 퍼즐일 겁니다. 내 삶이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글 역시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글이나 완벽한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완벽함을 꿈꾸며 성장해 나갈 뿐입니다. 그러니 먼저 조금 모자란 내 삶부터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부족한 내 글부터 좋아해 주면 좋겠습니다. 글 자체가 마음에 안 들면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즐겨봐도 좋겠습니다. 내 글을 좋아하게 되면 그 글이 성장하는 모습을 사랑하게 될 테고, 그때부터 글 쓰는 시간은 항상 즐거운 데이트 시간이 되어 줄 겁니다.

글은 삶의 그림자입니다. 내 삶의 정체성에 따라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존재가치에 따라 글의 가치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가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스스로 비춰볼 거울이 없기에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글을 통해 내 삶의 모양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죠.

제 삶은 온통 얼룩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게 제 삶의 무늬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어리숙하고, 서툴지만, 그런 글이 삶과 함께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만큼 행복한 것도 없을 겁니다.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이다혜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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