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
덥다고 옷을 다 벗어도 시원해지지 않지만, 추울 때는 옷을 더 입으면 따뜻해지는 것도 특별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요즘엔 여름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평소보다 더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좋을 뿐입니다. 덥지만, 그래서 대충 반바지에 티하나 입고, 배낭하나에 읽을 책 몇 권만 챙겨 나가도 즐겁습니다. 들고 다니면서 더워질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는 낡은 텀블러에 담긴 시원한 커피도 일품입니다.
이게 다 여름이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여름에는 얼어 죽는 일이 없겠구나. 밤새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겠구나.' 같은 생각입니다. 왠지 공평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한 결과가 아니라 그냥 마음으로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여름에는 누구나 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 땀의 밀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여름에 남들보다 더 많이 땀 흘리며 가을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고, 방황만 하다 의미 없이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여름은 공평합니다. 다 같이 덥고, 다 같이 땀을 흘립니다.
공평하다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 준비된 땀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날이 무척 좋습니다. 아직 서울에는 장마가 시작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뜨거운 여름에만 장마가 찾아옵니다. 땀 흘리는 사람만 땀에 미끄러집니다. 땀에 미끄러진다고 땀 흘리기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마가 온다고 여름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분명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카뮈가 <결혼・여름>에 남겼던 아래 문장처럼 말입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가 생의 의미를, 자연의 이치를,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이거 하나만 기억해 보려 합니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제법 공평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