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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Sep 08. 2023

#_비빔밥 사장님

단골 식당에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사무실 근처에 자주 가는 백반집이 있습니다.

선희가든이라는 곳인데요. 이름부터가 사장님 성함이 들어간 자부심이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식당입니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사무실 이사오기 전에 근처 일본식 라멘집에 들러서 밥종류를 먹고 싶어서 주문했는데, 사장님이 밥이 다 떨어져서 식사가 안된다고 죄송하다며 알려준 식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 처음 가서 식사를 했는데 6500원짜리 백반이 아주 훌륭하게 나와서 반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가서는 제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시켰는데, 비빔밥 또한 훌륭해서 종종 제육볶음이 백반메뉴로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늘 비빔밥을 먹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서 단골이 되자 사장님은 저를 보며 항상 비빔밥만 먹는다며 '비빔밥 사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한동안 사정이 있어서 못 가다가 정말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사장님이 무척 반겨주시며 "비밤밥 사장님 오셨어~"라고 외치셨습니다.


이제는 계산도 제가 직접 합니다. 며칠 전에는 김치찌개가 백반으로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부탁드려서 라면사리를 하나 넣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백반이야 그냥 떠서 주면 그만이지만, 라면사리를 부탁하면 따로 끓여서 줘야 하니 번거로운 부탁이었을 텐데도 흔쾌히 해주셨습니다. 나오면서 그렇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니 백반집 김치찌개가 길 건너 김치찌개 전문점보다 더 맛있으면 어떡해요. 사장님~ ㅎㅎ"

빈 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게 잘 먹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덕담이었습니다.


관계는 아주 작은 실 하나로 연결되지만, 그 실이 계속 오고 가다 보면 어느새 작은 누빔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됩니다. 백반집 사장님은 저를 잘 알지 못하시고, 저 역시 여든이 넘으셨음에도 정정하게 매일 아침 일찍 식당에 나와 장사를 하시는 사장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 반복되는 만남에 그분들에게 저는 '우리 집 음식을 항상 맛있게 먹고, 특히 비빔밥을 좋아하는 사람'일 테고요. 저에게 그 사장님은 '평생 음식장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줄 아는 멋진 분'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깊이 있는 만남만이 좋은 만남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은 일상에서 가끔씩 만나는 가벼운 만남과 관계도 충분히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오후에 오랜만에 만난 강사님 한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매일 타고 다니는 마을버스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매일 그 버스를 타고 가는 걸 아니까 설령 정류장에서 핸드폰을 보거나 딴짓을 해도 멈춰서 문을 열어주는 기사님이 계셨다고요. 그런데 그분이 며칠 전에는 버스승객으로 타고 귀가를 하는 버스에 같이 타고 오면서 우연히 이제 승진을 해서 다른 노선으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강사님은 아쉬움과 감사함이 교차하며 뭐라도 드리고 싶어 가방 속에 있는 작은 독서용 포스트잇 세트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사님은 무척이나 고마워하셨다고요. 그리고 어제는 버스정류장에서 문자를 보내는 중에 버스가 멈추지 않고 바로 가버려서 놓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자신을 알던 기사님의 부재를 한번 더 느꼈던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화려해도 냉랭한 공기가 도는 집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소박해도 행복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더라는 피자 배달 청년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중략) 훌륭한 건축의 조건은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 집에 가장 필요한 건 값비싼 장식물도 가구도 아닐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감싸 주는 사랑, 바로 그것이 집 안을 따뜻하고 편안한 향기로 채워 주겠지요.


송정림 작가는 "행복의 냄새"라는 글에서 집에 필요한 것은 좋은 가구가 아니라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진 행복의 냄새라고 말합니다.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의 일상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소하고 가벼운 관계라고 할지라도 작은 배려와 관심으로 그 잠깐의 시간을 행복한 경험으로 채워갈 수 있다면 내 삶의 보다 많은 시간 속에서 행복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요? 그런 행복은 내 주변 사람들까지 더 미소 짓게 만들 테고요.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송정림의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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