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무언가 내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감정과 느낌의 정체를 발견하기 위해 글로 끄집어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가 하면, 좀 전에 읽었던 책 속의 멋진 문장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글로 남겨놓기도 합니다. 대체로 그 문장을 그대로 필사하지만, 더러는 그 옆에 내 생각을 함께 적어놓기도 합니다. 책을 내기 위해 0월 0일까지 초고를 완성하고, 0일에 투고하겠다는 결심으로 글을 쓰는 분들도 계십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글을 씁니다. 그리고 힘들어하시죠. 잘 쓰기가 어려워서 힘들어하시기도 하고요. 막막해서 시작조차 망설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냥 한 가지만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라톤이 시작되면 누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끝까지 뛰는가가 중요합니다.
지금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해서 저기 앞서 가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혹은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서 지금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분들도 있지요.
예컨대 제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1979년에 문학상을 받고 데뷔를 했는데요. 그때는 제가 한 살 때였습니다. 저는 마흔이 넘어서야 제대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그분은 이미 40년 전에 공식 작가로 책을 내신 거니 저와의 간격이 상당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쓸 수 없을까 좌절한다면, 그건 지나친 비교를 넘어 자기 망상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그런 일들을 곧잘 경험하곤 합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나 초보 작가들에게 더 그런 마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글에 대한 어떤 경험이 있는지 알지 못하잖아요.
결국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내 글을 성장시키기 위해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내 글을 다른 글과 비교하면서 자기검열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재미도 없어지고, 괜히 주눅만 들뿐이지요.
정말 전업작가를 꿈꾸시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전업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경험이나 스토리, 지식 등을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처음부터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건 가혹합니다. 내가 글쓰기라는 여행을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다른 사람들이 지금 내 글을 읽고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그런 틀에 가둔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게 어쩌면 글쓰기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일단 들어선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속도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 회복과정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장속도를 체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꾸준하고 지속적인 글쓰기가 필요한 것이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많은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놀라운 창조성과 예술성을 발견해 내는 거 아닐까요? 하루키가 말한 문학의 광맥이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통해 자신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다 보면 세상과 연결된 무언가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일 겁니다.
자, 이제 우리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달려 보면 어떨까요?
아까 마라톤에 비유했지만, 사실 글쓰기도 인생도 여행과 더 비슷한 것 같아요. 저마다 가는 목적지가 다르니까 말이죠. 내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까지만 내 컨디션을 잘 체크하면서 내 스케줄에 맞게 가면 될 일입니다. 같이 여행 가는 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먼저 가든 나중에 오든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그저 내 여행에서 새롭게 보고 느낀 것들을 만끽하며 기록으로 남기면 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