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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01. 2023

#_'짜증의 방'에서 얼른 나오세요

감정의 방에서 나오는 법

저녁을 먹은 뒤 집에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은 베란다에 있는데, 제가 베란다 문을 열어놓는 걸 아내는 싫어해서 종종 그럴 때마다 잔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저도 참 그냥 잘 닫겠다고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인데, 그날은 왠지 저도 짜증이 났습니다. 지금은 청소하느라고 열어놓은 건데 그거까지 잔소리를 하면 어떡하냐고 같이 뭐라고 했습니다. 잠시지만, 언성이 높아지자 거실에 있던 딸이 왜 둘이 싸우냐며 마지막으로 짜증 릴레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보니 짜증 나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각자 할 일에 집중하였는데요. 딸은 그러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한번 짜증이 난 후부터 2시간 넘게 짜증모드로 일관하였기 때문입니다.

원인 제공은 제가 했으니 어느 정도는 참아줄 수 있으나 이유 없이 계속 짜증 내는 말투로 툴툴거리는 건 계속 받아주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불필요한 짜증을 내는 일을 무척 싫어하는 편인데, 한 명이 짜증을 내면 연쇄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감정의 불편함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감정의 파장 하나로 인해 일정 시간과 공간이 불쾌함으로 채워지는 게 싫은 거죠. 딸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감정에 서툰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종종 우리는 어떤 환경이나 사건으로 인해 내가 원치 않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비유로 들면 이런 건데요. 내가 앉아 있는 자리 위로 "짜증의 방"이 쿵하고 떨어지는 거죠. 내가 뭔가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가 짜증의 방으로 바뀐 것입니다. 맞아요. 내가 잘못한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요. 내가 계속 그 방에 가만히 앉아서 짜증을 느끼며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일어나서 방문을 열어 나가면 옆에는 "고요의 방"도 있고 "행복의 방"도 있습니다. 어떤 방이든 내가 원하는 방의 문을 열고 그 방으로 들어가면 다시 내 마음은 고요해지거나 행복해질 수 있는데요. 우리는 가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짜증의 방에 앉아 같이 투덜거릴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준 대상을 욕하거나 짜증 내는 것도 때론 필요할 수 있겠지만, 굳이 계속 그 방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내 삶의 주도권은 나한테 있는데, 내가 원치 않는 환경에 사로잡혀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낭비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니까 말이죠.


안네 프랑크는 그 유명한 <안네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하나의 촛불이 어둠을 이겨낼 수도 있고 어둠을 규정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라.

그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주변에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마음을 가져라.


우리는 내 마음속의 내가 원하는 촛불을 켤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독일 나치군을 피해 2년 넘게 숨어 지내야 했던 14살 소녀가 남긴 말이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누구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견뎌낸 그 어린 소녀가 전하는 진심 어린 말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힘든 상황 속에서 14살 안네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우리가 못할 리 없습니다. 감정의 방에 들어갔다고 해서 계속 그 방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것처럼 원치 않는 감정의 방문을 열고 나와 내가 원하는 마음의 방으로 가도 되고, 안네가 말한 것처럼 내 마음의 기쁨의 촛불을 켜서 어두운 감정의 방을 환하게 밝히는 것도 방법입니다.


중요한 건 얼른 그 방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아. 딸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계속 짜증만 내는 딸에게 말하면 그저 잔소리만 될까 봐 글로 남겨 봅니다. 언젠가는 이 글의 의미를 이해해 주겠지요?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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