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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03. 2023

#_길을 막고 있는 사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사무실(사이책방)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이화사거리 정거장에 내려서 오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아 최단거리 코스인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재활용물품들을 정리하는 차량과 리어카 등으로 인해 길 대부분이 막혀있었습니다. 아예 못 지나갈 정도는 아닌지라, 비스듬히 몸을 옆으로 비켜서 간신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빠져나올 때쯤 제 백팩이 리어카에 쌓아둔 박스에 걸렸었나 봅니다. 뒤어서 리어카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든 아저씨 한분이 저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이씨~ 가방"


아주 짧은 순간 좀 짜증이 났지만, 굳이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던 저는 "아, 죄송합니다."라고 가볍게 사과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사실 차량이 골목길을 막고 있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임시로 짐을 싣기 위해 주차하면서 보행자가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상태여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간신히 지나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짐(재활용 박스)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저 역시 더 큰 불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게 불편한 거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잘못의 원인제공을 한 당사자가 저에게 뭐라고 하는 건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뭐 이것 역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일상일 뿐이겠죠.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 봅니다. 나는 나만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준 적은 없었는가?

내 입장에서 잠깐이면 되니까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그 상황을 처음 겪는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진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며칠 전 커피를 사기 위해 골목길에 잠시 주차한 일이 떠오릅니다. 제가 차를 세울 때만 해도 지나가는 차량이 한 대도 없었는데, 커피가 나올 때쯤 되었을 때 갑자기 한쪽에 차량이 많아지면서 제가 세운 차를 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차 싶어 차를 빼러 가려고 하는데 커피가 나왔더군요. 부랴부랴 커피를 들고 차를 빼러 나갔더니 반대쪽 차량이 빠지면서 제 뒤에 서있던 차 한 대가 먼저 지나갔습니다. 잠깐이지만 불편했을 그분께 사과라도 드리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그 일이 떠오르네요. 저도 똑같은 사람이었군요. 


문득 논어 위령공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여쭈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제 앞 길을 막았던 아저씨를 용서하였습니다. 더불어 제 짧은 입장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에게 본의 아니게 불편을 주었던 일을 반성합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세상이 변화되길 바란다면,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변화부터 시작하는 게 도리일 겁니다.

오늘도 제 가방과 길을 막고 있던 낯선 아저씨 덕분에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공자(孔子)의 <논어(論語)> 위령공 23편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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