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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04. 2023

#_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

내 삶에 스스로 댓글을 달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보이곤 하는데요. 실제로는 관계에 굉~장히 무심한 사람입니다. 저를 오래 알고 지낸 분들은 아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무관심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대학시절 사귀었던 첫사랑과 사귄 지 1년쯤 되었을 때 늘 생머리만 하던 그녀가 뽀글뽀글 파마를 했는데, 제가 뭐가 달라졌는지 몰라본 일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여자친구가 얼마나 섭섭해했었는지, 제 자신을 깊이 통찰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때부터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세심하게 관찰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물론 첫 번째 대상은 여자친구였고요. 그렇게 3년 정도 지날 무렵 저는 새로운 능력 하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어제 했던 귀걸이가 오늘은 어떤 귀걸이로 달라졌는지, 오늘은 화장이 잘되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등등이 아주 세밀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매일 여자친구의 얼굴을 관찰하다 보니 메이크업 베이스를 했는지 안 했는지까지도 쉽게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지요. 물론 여자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걸 거의 모르거든요.


이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며 '사회성 패치'가 된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집중할 수 있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좋은 것 같은데 사실 또 그렇지가 않아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우선 알아도 모른 채 하는 게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철이 없어서 내가 뭔가 더 관심을 가져주는 게 무조건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사람들과 지내면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여과 없이 말하거나 칭찬하기도 했는데요. 제가 옷매장에서 매니저를 하던 시절(20대 후반)에 한 직원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외모에 신경 쓰는 건 매니저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라고요.

그 말인즉슨 불필요한 관심은 꺼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에둘러한 것이었죠. 이때 또 한 번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되 불필요한 과도한 관심과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관계의 거리마다 적당한 관심의 크기가 마치 암묵적인 약속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뭔가 알아도 짐짓 모른 채 해주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어느 직원이 새로 머리를 해서 변화를 줬다면, 꼭 집어서 머리컬러가 잘 받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그런 게 다 보였더래서) 그냥 '오늘 OO 씨 뭔가 더 화사하네요.' 혹은 '분위기 있네요' 정도로 칭찬해 주는 게 가장 적당한 멘트였습니다.

사람 따라 훨씬 더 구체적인 칭찬이나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그런 거 몰라줘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멘트가 가장 상대방에게 불편하지 않는 적당한 칭찬의 거리였던 것이죠.


두 번째는 저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게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그래서 마치 마음에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만날 때는 관계집중 스위치를 올려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지만, 이후에 혼자가 되면 그런 스위치를 꺼놓는 거죠. 그래서 제가 관계집중 스위치를 끈 채 무언가 집중하고 있을 때(독서, 사색, 계획 등)는 저한테 말을 걸어도 잘 모를 때도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잔소리를 참 많이 들었고, 지금은 아이들에게도 종종 듣는 잔소리입니다. 왜 몇 번을 불러도 못 듣냐고요.


생각해 보면 저는 혼자 '생각의 방'에서 노는 걸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있을 때가 편하고, 혼자 밥 먹거나 커피 마시러 가서 책이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익숙하고 즐겁거든요. 혼밥은 너무나 익숙하고, 혼자서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식사가능하지요. 실제로 종종 그렇게 먹기도 하고요.


물론 혼자 있는다고 해서 시간을 무조건 알차게 보내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멍 때리는 일도 많고, 무언가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정해놓고 시작하지 않으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명상이나 필사, 낭독 등을 하는 시간이 저한테는 무척이나 값진 선물 같은 시간이 되어 줍니다. 이번 추석연휴에는 가족들과 선재도에 갯벌체험을 다녀왔는데요. 여행을 가서도 아침저녁으로 저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저는 많이 불편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숙소에 들어와 TV를 볼 때 저는 글을 쓰거나 필사를 하기도 하고, 아침에 가족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때 잠깐 나와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내 생각에 댓글에 대댓글을 다는 시간이 저에겐 참 소중합니다. 타인과의 관계만큼이나 내면의 나, 혹은 내가 모르던 나, 내가 원하는 나를 발견하고 관계 맺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

네, 가끔 제가 카페나 카톡에 댓글이나 답변이 없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면 된다는 뜻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시간은 존중받아야 함은 물론이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고 정리해 버린 매일매일의 일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내가 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나로 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참 많은 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 제가 있는가 하면,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만나고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저도 있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저를 잘 아시는 분이시라면,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가끔 제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저에게 노크를 한번 해주세요. 문자도 좋고, 전화도 좋습니다. 반갑고 기쁘게 연락을 받겠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고 해서 결코 '혼자만' 지내길 바라는 건 아니니까 말이죠.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김신회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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