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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05. 2023

#_의심의 눈초리

의심하는 것과 믿어주는 것

저희 아이들은 매일 해야 할 공부를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입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12시까지 다 못하면 '게임금지'가 됩니다. 반면에 해야 할 일만 다 하면 게임을 하든 친구들과 놀든 자유를 보장해 줍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학교를 갔다 놔서 학원(피아노, 영어, 수학)을 다녀오면 이미 저녁 시간입니다. 저녁 먹고 나서 바로 또 그날 해야 할 공부를 한다는 건 아이들로써는 굉장한 스트레스일 겁니다. 그래서 대략 7~12시 사이의 5시간 정도의 시간 중에 언제든지 그날 집에서 해야 할 몫의 숙제와 공부를 완료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자유시간으로 허락해 준 것입니다. 집에서 하는 공부도 빨라야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하루 집에서 자유시간은 3시간 정도밖에 없는 셈이지요.

사실 이마저도 저희는 따로 확인하지 않습니다.(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진행상황을 점검하긴 하지요)

제가 바라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도 통제력을 가지는 것인데요. 이 방법이 최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의 큰 성과는 느끼는 편입니다.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엄마 아빠가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자기가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못하면 알아서 다음 날 게임 금지를 실천합니다. (여러 가지 꼼수를 부리기도 하지만 ㅋㅋ 큰 틀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게 가장 기특한 부분입니다.) 아슬아슬하게 다할 때도 있고, 반대로 아슬아슬하게 다 못할 때도 있지만, 가급적 원칙대로 적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몇 번 봐주거나 했더니 계속 또 봐달라고 하고, 봐주는 것을 아예 예상에 포함해서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죠. 그래서 게임 금지가 되면 같이 아쉬워해줍니다. '아니, 그러게 아까 조금 일찍부터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면서 위로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씩씩하게 '괜찮아, 내일은 게임 안 하고 친구들이란 운동장에서 놀면 돼.'라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하고요.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입니다.

'혹시 숙제를 다 안 했으면서 숙제를 다했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

'게임을 안 한다고 했으면서 안보는데서는 게임을 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안 들 수는 없는데요. 실제로는 거의 티 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냥 엄마, 아빠는 너희들을 100% 신뢰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든, 공부를 하든, 친구들과 놀든, 항상 건강하고 바르게 행동할 거라고 믿어주는 시선 하나가 그 아이의 무의식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줄거라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 받은 소중한 배움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뭘 해도 뭐라고 하기보다는 지지해 주고 믿어 주셨는데요. 실제로 모든 일이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음에도 부모님의 그런 지지 덕분에 항상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Emmy Werener)를 중심으로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진행한 30년이 넘는 종단연구를 통해 밝혀낸 사실입니다.

총 833명의 아이들 중에 201명이 고아나 범죄자의 자녀 등의 고위험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었는데요. 놀랍게도 그들 중 35%인 72명이 매우 모범적이고 성공적으로 성장하는 '예외'적인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조사한 결과 그들에게 존재하는 단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요.

바로 자신을 변함없이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최소 1명 이상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부모 중 한 명이거나 할머니, 삼촌일 수도 있고요. 혹은 선생님이나 친구인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사람은 자신을 끝까지 지지해 주는 1명 이상의 존재만으로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원치 않는 환경이나 상황에서 다시 회복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잘 자란 아이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믿어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저는 독서 정규 과정 마지막 수업에서 늘 이 내용을 함께 나누는데요. 그 이유는 적어도 나는 수업에 참여하신 모든 선생님들을 끝까지 지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설령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옆에서 나에게 말 걸지 않아도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나를 끝까지 믿어주는 한 명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항상 자신에게 믿음보다는 의심을 먼저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못하면 어떡하지?'


이제 성인이 된 나에게 사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두려워할 일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평생 나를 따라다닌 의심의 눈초리가 나를 또 한 번 내려다보듯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할 수 있겠어?'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크게 혼난 경험의 트라우마가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 끊임없이 내 발목을 잡곤 합니다. 한 번쯤은 그 두려움의 끝까지 가서 그 보잘것없는 실체를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설령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나를 끝까지 지지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더라도 괜찮습니다. 나부터 나를 지지해 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클리셰 같은 말이지만, 내가 나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과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의 삶은 극명하게 다를 테니까요.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의심스러운 것'만 더 많이 보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믿음직스러운 것'이 더 많이 보입니다.

어떤 눈으로 나를 바라볼지, 자녀를 바라볼지, 타인을 바라볼지 그건 매우 중요한 삶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에 따라 삶의 결이 무척 많이 달라지게 될 겁니다.



* 매일 책 속의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댄 자드라의 <파이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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