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외모를 단장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쓰고 읽으며 자신의 내면을 단장하기 때문입니다. 글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거울을 통해서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듯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감정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됩니다.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나로 미루어 타인을 이해하게 되며, 타인을 넘어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글을 쓰면서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내 마음을 알게 되니 어떻게 위로하고 응원해줘야 할지도 조금씩 알게 됩니다. 그렇게 웅크리고 있던 어린 영혼이 조금씩 자라나 진정한 내면의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성장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합니다.
나를 가두고 있던 여러 가지 구속에서 나를 해방시켜 줍니다. 그동안에는 두렵게만 느껴졌던 고통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삶은 성장의 과정이고,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되기에 고통 자체가 없어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에 초연해진다고 표현해야 적당하겠네요. 마치 어린 시절에는 작은 상처 하나에도 울고불고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면 넘어져서 무릎이 좀 까져도 대수롭지 않게 약 바르고 밴드 붙이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막연한 두려움은 이미 겪어온 삶의 경험과 고통 위에서 자유롭습니다. 쓰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어떤 상처가 났는지, 어떤 흉터가 있는지 매일 나를 만나 대화하고 들여다본 사람만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더 이상 작은 고통에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가 다친 마음에 내가 대신 약을 발라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성장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자유로워집니다. 근육운동을 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도저히 더 들기 힘들 때까지 나를 몰아세울 때 우리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만, 그 고통에서 근육은 더 성장하고, 결과적으로 더 무거운 무게까지 감당할 수 있는 몸으로 바뀌어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쓰고, 글을 쓰며 만나는 내가 반가워서 씁니다. 쓰다 보면 더 즐겁게 읽게 되는 수많은 책들이 나를 더 새롭게 합니다. 새로운 나는 어제의 나와는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했던 꽉 막힌 껍질 속이 아니라, 껍질을 깨고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찬란한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미완성입니다.
미완성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인간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늘 미완성이지만 완벽을 향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시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나날이 초라해지는 자신을 마주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삶은 끊임없는 성장의 연속입니다. 한철 꽃피고 마는 꽃뿐만이 아니라 수백 년간 새로운 뿌리가 가지를 뻗어나가며 새로운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 가진 아름다움이란 젊은 시절 싱그러움과는 또 다른 깊은 울림입니다.
Verba volant scripta manent.
'베르바 볼란트 스크립타 마넨트'
"말은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는 라틴어 구절입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우리의 말과 생각도 사라집니다. 하지만 글은 남습니다. 글은 남아 나를 대신합니다.
유난히 맑은 가을날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사라지는 삶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