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생의 치트키
근래 들어 글이 통 안 써집니다. 생각해 보면 술술 잘 써지는 게 이상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일은 술술 잘 풀리는 편입니다. 생각했던 것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제 앞에 짠하고 나타납니다. 잘하려고 하는 건 정작 답답하고 잘 안 풀리는데, 크게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했던 일들은 이상하리만큼 쉽게 풀려갑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진짜 성장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식물이 자라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을 겁니다. 내가 눈으로 하루종일 지켜본다고 식물이 자라는 걸 체감하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냥 물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무심코 놔두어도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는 녀석들을 보곤 합니다. 우리 삶과 닮았습니다.
글이든 일이든 잘 안 풀릴 때의 공통점은 "조급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에 쫓겨서 글을 쓰면 글이 안 써집니다. 오히려 별로 글 쓸 마음이 없었는데 글감이 떠오르거나 발견되는 경우가 훨씬 많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고, 빨리 돈을 벌고 싶고, 빨리 남들을 앞질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일이 잘 안 풀립니다. 결국 조급함은 성과의 가장 큰 적입니다.
마감기한이 있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목표를 정하고 어느 시기까지 무언가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심하는 것은 성과를 내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감이 있다고 해서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 그러니 이제 조급함은 내려놓읍시다. 중요한 일일수록 조급한 사람만 손해 보게 되어 있습니다.
막연한 조급함을 버리고 대신 선명한 마감기한을 정해 보면 어떨까요?
되지도 않을 일들을 이것저것 건드리기보다는 지금 확실하게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확실한 기간 내에 끝내보는 거죠. 작지만 확실한 성취는 우리를 전진시켜 주니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성과가 잘 안 납니다. 분명히 시간을 다 쏟아붓고 있는데 결과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잘못하고 있느냐면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도 잘 안될 때!
그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레벨업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뭔가 한 가지라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가 그 한 가지를 잘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세요. 안 보이면 물어보세요. 적당히 잘하는 사람 말고 굉장히 뛰어난 사람들의 확실한 공통점은 바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전진하지 못하고 막혀있는 시기를 누구보다 더 뜨겁게 보냈다는 점입니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 누구나 적당히 해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과가 나면 어떨까요?
아무도 노력하지 않을 겁니다. 뭐 적당히 해도 그냥 하는 만큼 무조건 성과가 보장될 테니까 말이죠.
그런데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가요? 안 그렇죠.
적당히 하는 사람들은 적당한 결과를 가져갈 뿐입니다.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어떤 구간을 만났을 때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면 있는 힘껏 그 구간을 뛰어넘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것을 뛰어넘어 본 사람은 알거든요. 그 시기는 정말 어렵고 힘든데,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매우 쾌적해진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압니다. 그 힘든 구간을 넘어서면 그동안 내가 노력해도 얻지 못했던 성과들을 보상받는 건 물론이거니와 같은 구간에서 시도하다가 포기한 사람들이 두고 간 성과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거야 말로 정말 놀라운 인생의 비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들이 넘기 힘든 구간을 더 많이 건널수록 같은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간헐적인 노력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한 달만 더 유지하면 만기에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넉넉히 받을 수 있는데, 그 한 달을 못 참고 원금까지 손해 보면서 적금을 깨는 것과 비슷합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요?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직역하면 100척(30m) 높이의 장대 끝에서 한걸음을 더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전의 상식으로는 답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답을 얻게 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레벨업을 해서 내가 머무는 의식의 수준이랄까 차원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서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는데요. 책을 참 느리게 읽던 사람이었는데,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서 특정분야의 책은 아주 빠르게 읽으면서도 내용이 쉽게 다 파악되고 이해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속독을 깨우친 건데요. 이전에 느리게 읽던 시절에 내가 생각했던 속독과는 전혀 다른 행위였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내뿜은 숨이 이산화탄소라는 걸 잘 알지만, 그걸 눈으로 볼순 없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압력과 매우 낮은 온도에서는 이산화탄소가 고체상태로 변하게 되는데요. 바로 드라이아이스(dry ice)죠. 액체 속에 녹이면 액화탄산이 되면서 우리가 마시는 탄산음료가 되고요.
이처럼 일정한 조건에서 물체는 차원자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무언가 하는 행동이나 일 역시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 뭔가 잘 안 풀리고 힘들다면 2가지만 고민해 보세요.
단순히 내가 마음이 조급해서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라면 막연한 조급함을 선명한 목표와 마감으로 바꿔주면 될 것입니다.
조급하지도 않고, 충분히 노력하고, 제대로 하고 있음에도 뭔가 꽉 막힌 느낌이라면, 드디어 당신은 그다음 레벨로 올라가기 위한 테스트를 받는 중이라고 생각하세요. 최선을 다해 그 구간을 지나가고 나면 분명히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