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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Nov 06. 2023

#_뜻밖의 맑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며칠 사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비가 와서 일정이 지연되기도 하고, 언뜻 나와 상관없는 일 같지만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애써야 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나하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제법 큰 스트레스가 됨을 느낍니다.

결과적으로 피로감이 누적되고, 신경이 예민해지고, 괜히 우왕좌왕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 혼자 아등바등하고 있는 느낌이라 왠지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택배를 보내야 하는데, 택배사 프로그램이 바뀌어서 실행이 안되고, 비밀번호가 막혀서 접속이 안되고, 택배에 안대가 부족해서 얼른 다이소에 가서 부족한 수량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포장하는 박스도 하나 부족해서 옆에 있는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몇 개 사면서 하나 얻어왔고요.

바빠서 그냥 올까 하다가 이럴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절실해서 마트 옆 와드커피에서 제가 애정하는 1500원짜리 커피를 한잔을 받아 들고는 서둘러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커피숖을 나오는데 구름사이로 햇볕이 쫙~ 쏟아집니다. 불과 1분 전까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이전에 내린 비 때문에 콘크리트 바닥이 반짝거립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온 세상이 반짝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고속충전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싸우다가 체력과 정신력이 다 떨어진 상태인데, 한 번에 꽉 채워주는 포션(물약)을 먹은 느낌이랄까요? 분명히 오늘은 비가 온다고 했고, 하루종일 비가 오는 우중충한 하루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마치 보란 듯이 아름다운 찰나의 장면을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 혼자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셔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푸시킨이 말한 것처럼 삶이 우리를 속인다고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당초 삶은 우리를 한 번도 속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우리가 그렇게 느낄 뿐이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순간들도 오히려 추억이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삶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과 태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뿐이니까요.


마음이 미래에 고정되어 있으면 현재는 한없이 우울해집니다. 반면에 현재가 단 한번뿐인 순간이고, 사라지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임을 깨달으면 그리움이 되겠지요. 그러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삶이 펼쳐진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우선 오전에 해야 할 일들은 서둘러 마쳐놓고, 이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 글을 남겨봅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쏟아지네요.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그것대로 아름답습니다.

몇 시간 전의 불만이 마음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달라지네요.



*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 오늘 문장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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