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풀려고 하면 때로 더 큰 오해를 부르곤 한다
최근에 제가 아내와 같이 쓰는 카드키를 하나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요.
아내는 그것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아했고, 저는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못 찾았고, 요즘은 여러 가지 바쁜 일이 많으니까 우선 혹시나 다른 사람이 주워갔을 수도 있으니 사용할 수 없도록 카드키를 정지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카드키 말고도 자주 쓰는 체크카드도 잃어버렸습니다. (속닥속닥)
제가 뭘 좀 잘 흘리고 다니는데 소질이 뛰어난 편입니다.
분명히 어딘가 있을 것 같은데, 카드키가 없으니 저도 스트레스 받고 있고, 요즘 여러 가지 바쁜 일정들로 인해 굉장히 피로감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 아내까지 불을 질러서 평소 같으면 좋게 이야기하고 넘어갔을 상황인데, 말다툼으로 번지게 된 것이었죠.
서로 감정이 상하니 안 해도 되는 불필요한 말을 하게 되고, 그게 상대방을 더 열받게 만드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됩니다.
"따다다 다 다 다"
"끄그그 그 그 그"
"투두두 두 두 두"
"빠바바 바 바 바"
지나고 보면 의미 없는 감정을 소모하며 짧은 말다툼이 끝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경험상 이럴 때는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노동을 하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생각해 보니 결국 아내가 화가 난 것은 단순히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 겁니다. 여러 가지 그와 관련한 저의 대응이나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둘 다 바쁘다 보니 제 입장에서는 아내가 다 알 수 없는 스트레스나 일정상의 어려움이 있게 마련이라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데, 그게 오히려 오해를 삽니다. 결국 말다툼은 그런 오해에서 비롯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하나하나 그 상황을 설명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됨을 느낍니다.
오해를 풀려고 애쓸수록 더 큰 오해를 낳는다
결국은 제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MBTI를 좋아하진 않지만, T성향의 아내와 F성향의 저의 대화는 서로 맴돌기가 딱 좋으니까 말이죠. 서로 오래 같이 살고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소통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관계에서 오해는 문제요소가 아니라, 디폴트값이라고 봐야 합니다. 오히려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 신기하고 감사한 상황이랄까요.
암튼 그랬는데, 좀 전에 카드키를 찾아버렸습니다. ㅎㅎ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체크카드는 분실신고하고 재발급신청했고요.)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습니다. 더불어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하지만 T인 아내에게는 큰 효과는 없습니다.) 하루만 일찍 찾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 말다툼을 한 건 아쉽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가 그동안 말하지 못한 불편한 감정들을 소각시키는 시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그 관계가 카드키와 비슷합니다. 매번 당연히 카드키로 문이 열릴 때는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없어서 문을 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 답답함은 말로 다 할 수 없겠죠. 잃어버린 카드키를 아주 가까이서 찾은 것처럼 서로의 관계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방법 역시 가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조만간 아내에게 잊지 않고 작은 선물을 해야겠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늘 아내가 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내만큼 저를 충분히 봐주고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죠. 고마운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봐야겠네요. 무슨 선물이 좋을까요? 그건 아내를 조금 더 세심히 살펴보면서 찾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