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한 사람의 시간은 그 사람의 인생 자체입니다.
그 사람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볼 수 있을 테고요.
그 사람이 가장 많이 보낸 시간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됩니다.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머무는 곳이 곧 그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이 쉽게 공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개념이 아닙니다. 그가 보내는 시간은 반드시 공간을 포함하게 마련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에 따라 그 삶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얼마 전 <물건편>에서는 제가 아끼고 늘 가까이하는 물건들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조금 이야기 나눠볼까 합니다.
1. 새벽시간 × 사무실
올해 들어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새벽독서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큰 결심으로 시작한 일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연말에 집 근처에 있는 전망 좋은 사무실을 계약하게 되면서 매일 아침 6시 전에 출근해 6시부터 9시까지 하루 3시간 정도를 독서, 낭독, 명상, 필사, 글쓰기 등의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고, 매일 저를 성장시키는 시간이어서 정말 선물 같은 시간입니다.
특히 그 시간에 사무실에서 책을 읽노라면 처음엔 밤처럼 캄캄하다가 차츰 여명이 밝아오면서 빌딩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게 되는데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는 걸 보는 일상을 보내서인지 수면시간이 많이 줄었는데도 컨디션은 더 좋아졌습니다. (다만, 밤마다 졸음이 쏟아지는 게 문제인데, 사실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일찍 자면 되는 거라 차츰 개선해 나가면 될 거라 생각합니다.)
2. 아침시간 × 카페
사무실을 옮기고부터는 카페 가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오전시간을 내서 사람이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한주를 계획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집니다.
개인적으로 스타벅스는 이용자가 많고 대화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서 다소 소음도가 높은 편이라서 테이크아웃해서 음료를 먹는 경우가 더 많고요. 머물더라도 잠깐 30분 내외로 머리 식히고 가는 느낌으로 머물다가는 편입니다. (텀블러에 음료를 받으면 잔을 교체할 필요가 없어서 짧게 머물다가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카페는 오전에 일찍 오픈하고 사람이 없는 곳인데요. 저희 동네에는 대표적으로 커피빈이 그렇습니다. 근처에 4군데가 있는데, 그중 2곳이 아주 적격이라 좋아하는 편입니다.(심지어 그 두 곳은 2층+통창이라 아침햇살도 은은하게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학동역과 언주역과 사이에 있는 이디야 커피랩은 인테리어와 가구가 좋아서 또 다른 느낌으로 좋은 공간입니다. 예전에는 토요일 오전에 독서모임을 거기서 하기도 했었는데, 모임이 없는 날도 혼자 가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하기도 했던 공간입니다.
신논현역 근처에 있는 욕망의 북카페는 올초에 처음 가보고 열흘 뒤에 예약하고 또 가봤었는데요. 그곳은 아예 입장 시에 스마트폰을 반납해야만 입장이 가능한 공간이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뭐 하지만 책 읽으러 가는 경우라면 오히려 좋은 환경이라 집중도가 무척 높아지고,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중요한 연락을 받아야 하거나 바쁠 때는 안 가는 게 좋겠죠.ㅎㅎ)
어쨌거나 저는 커피도 좋아하고 카페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지만, 사람 많은 카페는 싫어해서 아침 일찍 조용한 시간에 가서 오랫동안 여유 있게 머물다 올 수 있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탐색해서 찾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3. 오후시간 × 책방
오후시간엔 대학로에 있는 책방으로 가는데요. 그곳에는 저의 수평적 공간이자, 제2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제 소장도서들이 잘 진열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책을 배송받는 것도 제가 책을 배송하는 것도 다 그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공간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여유 있고 자유롭게 책장들을 탐색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마치 나의 오랜 생각들과 관심사들, 취향들을 들여다보는 느낌입니다. 문득 다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펼쳐서 읽기도 하고, 같이 모아두고 싶은 책들을 같은 책장으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는 앉아서 책을 읽기보다는 대체로 서서 책을 보거나 활동하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4. 이동시간 × 대중교통
저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차를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걸 선호합니다. 이유는 운전을 하면 운전 외에 다른 걸 거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에는 의도적으로 일과시간 중에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잘 안 보려고 하다 보니 이동시간에는 음악을 들으면서 카톡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웹툰도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동 중에 스마트폰을 하면 확실하게 끝나는 시간이 정해지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통은 퇴근시간에 많이 하다 보니 그게 귀가해서까지 이어져서 저녁에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혹 정신이 팔려서 정류장을 지나가거나 하는 일들이 있는데, 그건 책을 읽어도 비슷한지라 ㅎㅎ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익숙하게 넘어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약속시간보다 1시간 정도는 빨리 가려고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쓰기 전에는 뭔가 많을 것 같았는데, 대부분 아침시간에 제법 오랜 시간을 루틴 하게 활용하는 편이라 적을 게 많이 없군요. 대단한 일상은 아니지만, 사소한 부분이라도 작은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공간만큼은 자신에게 잘 맞는 공간을 적극적을 찾고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플러스(+)되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도 회사도 이동하는 거리에서도 그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다면, 같은 시간을 살아도 훨씬 더 밀도 높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죠.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는 아직 하루 중 1/3 정도밖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더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개선해 나가다 보면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보낸 시간과 내가 머문 공간이 결국 나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