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묵은 호텔엔 제일 위층에 사우나가 있었습니다.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사우나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틀 숙박하면서 2번 정도 이용했습니다. 한 번은 일정을 마치고 와서 밤에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갔었고, 한 번은 마지막날 체크아웃하기 전에 여유 있게 갔습니다.
이 사우나의 멋진 점은 노천탕이 있다는 점인데, 아래 사진과 같은 노천탕이 있습니다.(사우나 특성상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불가능했고요. 대신 이미지를 찾아보니 호텔 공식 블로그에 사진이 있네요.^^)
칸데오 호텔 공식 블로그 참조
신기하게도 사우나를 갈 때마다 보슬비가 왔습니다.
유리로 된 벽과 기둥을 제외하고는 다 뚫려있는 공간이다 보니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차가운 빗방울이 계속 머리와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몸을 더 깊숙이 담가봅니다. 입술 아래턱까지 잠긴 채 오사카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풍경이 보이더니 이제 노천탕 위로 하나둘씩 빗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많은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하나하나의 물방울은 파동을 일으키며 위 사진과 같은 찰나의 장면들을 연출했습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저는 한동안 그 물방울들이 펼쳐내는 황홀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이따금 조금 더 굵고 차가운 빗방울이 볼과 머리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말이죠.
저는 그저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똑같아 보이는 빗방울들도 저마다 다 다른 크기와 다른 방향에서 떨어지면 저마다의 물결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는 하나하나만 바라봤지만, 나올 때 보니 전체 풍경은 아래와 같은 움직이는 무늬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언젠가 글로 남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오늘 글로 남겨봅니다.
글로 적다 보니 그 방울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름에서 떨어져 허공을 날아 내가 몸담고 있는 욕조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은 처음엔 구름이었다가, 빗물이 되고,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파동이었으며, 결국 욕조 속의 물이 되었습니다. 욕조의 물은 흘러가 강물이 되거나 정화시설을 거쳐 다시 수돗물이 될 테고, 어느 집의 싱크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은 그 싱크대의 물을 받아 요리를 할 것이고, 냄비에 물을 받아 끓이면서 일부는 다시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 일부가 될 겁니다. 그 수증기들은 또 어딘가에서 모여 구름을 만들고, 또 어느 땅 혹은 어느 바다에 떨어질 테지요.
떨어져 나온 물방울은 구름인가요? 빗물인가요? 노천탕인가요? 수돗물인가요? 수증기인가요? 아니면 바다인가요? 그때마다 다르겠지만, 그 존재가 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을 겁니다. 모양과 현상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저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간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이 마치 저장된 동영상 파일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찰나의 순간들은 그때 한순간 존재했고 동시에 지금 내 마음속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제 이 글을 통해 기록으로도 존재하게 되었네요. 존재란 무엇일까요?
그때 내가 봤던 그 물방울들만 특별한 것일까요? 아니면 모든 물방울이 저마다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그 특별함은 어떤 기준으로 부여되는 것일까요?
지난 3일간 특별한 책을 읽으며, 숱한 질문에 대한 명쾌하고 심오한 답을 만났지만, 결국 인생은 질문입니다. 내가 스스로 묻고 답할 때만 나에게 의미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질문에 대답만 하거나 답이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남발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그저 그 순간 나에게 가장 고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오늘도 창밖으로 비가 내립니다. 시간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지만, 그때와 같은 감상을 느낍니다.
내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내 존재의 정체에 대해, 이 세상과 생명이라는 경이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2024년 2월 15일 오전 10시 19분,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날씨는 흐리지만, 마음은 더 환하고 밝아집니다.
그날 본 그 물방울은 그 순간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