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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Feb 13. 2024

#_프로포폴이 나를 잠들게 했다

강제로 잠들었다면 의도적으로 깨어야 한다

오늘 아침 지난달에 미리 예약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올해 국민건강보험에서 의무검사대상자이기도 하고, 종합검진한 지 2년쯤 되어서 미리 연초에 예약을 잡아두었던 날이 오늘이었거든요.

연휴 마치고 아침 일찍 건강검진받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새벽독서모임 마치고 가려니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평소 3시간 정도 여유 있게 하던 걸 2시간에 다 하려니 바쁘더군요.


시력은 조금 나빠진 듯했고(컨디션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인데, 큰 건 틀리고 작은 건 계속 정확하게 말해서 당황하시더군요.) 혈압이나 당장 확인할 수 있는 항목들은 대체로 정상이었습니다.

오늘은 다른 검사보다도 위내시경 검사가 메인이었습니다. 별도 비용을 추가하더라도 수면내시경으로 하기로 했는데, 수면을 안 한 적이 있었는데 좀 힘들더라고요. 민망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대체로 수면 내시경으로 검사를 신청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수면내시경을 할 때는 프로포폴이라는 하얀색 주사를 놓습니다. 눈을 뜨고 있다가 주사를 맞으면 순식간에 마취가 되면서 잠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간호사들이 저를 깨웠습니다.  오늘은 유독 마취가 조금 덜 깬 기분이 들었습니다. 잠시 회복실에 앉아 있으라고 안내해 주었는데, 9층 높이에 있는 빌딩이라 바깥풍경이 내려다 보여서 좋았습니다. 10분 정도 앉아있었을까요?

충분히 회복한 사람은 다음 검사받으러 이동하라고 하더군요. 조금 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정신 차리고 일어나 남은 검사를 마저 하고 돌아왔습니다.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포로포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지식과 정보가 주입되어 수많은 편견 속에 잠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마 새벽독서모임 때 읽었던 책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편견, 문화적 편견, 종교적 편견 등등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의 틀 속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물론 제한이라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제한을 통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잠에 덜 깨 몽롱했던 그 순간, 조금 더 자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강제로 잠에 들었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깨워 일어나야 합니다.


간혹 뉴스에서 프로포폴을 과용해서 중독된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이야기들을 보게 됩니다.

수면내시경 때 이용하는 것처럼 명확한 의료행위를 위해 소량 사용되면 무척 유용하지만, 그걸 과용하거나 남용하면 중독에 이르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독이란 그런 것입니다. 본질이 내 안에 있지 않고, 외부에 의해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상태입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의 진정한 의미와 삶의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삶은 무언가를 더 바라기 힘들 만큼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삶이 보여주는 매 순간 깨어있는 밝은 세상은 찬란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점심도 먹었 검사한지도 몇 시간 지났는데요. 아직도 계속 약간의 멍한 느낌이 좀 있네요.

이렇게 깨어있는 순간조차도 스스로 깨우지 않으면 우리는 눈 뜨고 잠든 사람처럼 세상을 살아갈 뿐임을 또 한 번 느낍니다.


아무래도 커피를 한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멍한 느낌도 좀 깨우고, 세상의 편견에 가려진 내 내면의 잠든 거인도 깨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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