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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04. 2024

#_인생이라는 책의 뒷면에는 정답과 해설이 없다

어느 초등부모가 말하는 아이의 미래

아내와 아이들 문제집을 사러 자주 교보문고에 들른다. 

이 정도 되었으면 자기들이 풀 문제집은 직접 골라도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러면 아이들이 그냥 쉬운 거만 풀려고 할 거라며 굳이 나를 데리고 교보에 가려한다.

뭐, 문제집을 사러 가더라도 교보에 가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마다할 이유는 없다.


몇 년쯤 되었을까? 이전까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지하 2층의 "초등학습" 코너에 정기적으로 가고 있다.

아내는 특히 국어문제집을 나에게 골라달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는 남편이 골라주는 문제집이 더 안심이 되나 보다.


신기하게도 엄마들은 아이들이 더 어려운 문제를 척척 잘 풀어내길 바란다.

과연 자신은 어렸을 때, 심지어 초등학생 때부터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푼 적이 있었을까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물론 이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문제집을 고르는 방법은 좀 다르다. 나는 조금 재미있을 것 같은 문제집을 고른다.

문제집이 술술 잘 풀리고 구성도 알차고 재미있다고 느끼면(물론 일반적인 재미와는 전혀 다른 그나마 다른 문제집보다 느껴지는 상대적인 재미겠지만) 자신감도 생기고, 더 많은 문제들을 푸는 것에 저항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해력이 약한 아들을 위해서는 어휘와 독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집을 사주었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다 풀긴 했는데, 여기서도 엄마와 아빠의 관점은 달라진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뭔가를 빨리 끝내고 노는 꼴을 보기 어려워한다.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하면 정말 여유가 많은 편이지만, 그래서 그런 심리는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이 뭔가 빨리 다 끝내고 놀면 괜히 같이 기분이 좋다. 그렇게 충분히 놀 수 있어야 또 공부하는 것도 기꺼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알아서 잘 공부해 준 덕분에 하루에 게임을 몇 시간씩 하면서도 성적은 늘 좋다.

게임을 하든, 친구들이랑 뛰어놓든, 매일 숙제와 정해진 양의 공부를 자기 전까지 규칙적으로 하고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공부를 먼저 하고, 놀라고 몇 달간 타일러봤는데, 포기했다.

집에 오면 무조건 각자의 방식으로 '게임모드'에 돌입한다. 딸은 로블록스와 유튜브에 접속하고, 아들은 후다닥 밥 먹고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피아노를 친다.(물론 게임도 하고, 쇼츠도 보지만 우선순위에서 조금 밀릴 뿐이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내내 공부하고, 바로 학원하서 또 공부하고 왔는데, 집에 와서도 또 공부부터 하는 건 내가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 놀아야 한다. 마음껏. 대신 꼭 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 시간을 통제해서 자기 전까지 마무리 짓기만 하면 되는 방식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2시간 이상을 신나게 논다. 그리고 10시가 넘어서야 숙제와 공부를 시작한다. 갑자기 집이 조용해진다. 

최대한 노는 만큼 놀고 제한된 시간(밤 12시)까지 숙제, 문제집, 목욕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한껏 집중한다. 물론 밖에서 뛰어놀다 온 아들은 노느라 피곤해서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고,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잠들 때도 있는데, 어쩔 수 없다. 할 건 해야 한다. 만약 다 못하면 게임 금지가 되니까.


원리는 간단한다. 

얼마를 놀든 뭘 하고 놀든(나쁜 게 아니라면)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해야 할 일만 알아서 해라. 

스스로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늘 생각하지만, 공부는 그 내용보다 방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문제집을 사면 책 뒤쪽에 정답과 해설페이지가 따로 나온다. 요즘은 분권으로 볼 수 있게 나온 책들도 많다. 그런 정답노트를 볼 때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하는 공부에는 정답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인생이라는 책을 아무리 끝까지 뒤져봐도 정답과 해설페이지는 나오지 않는다고.


학교공부는 답이 정해져 있고, 그 답을 찾고, 그렇게 알게 된 지식을 잘 기억만 하면 되지만,

실제인생은 답이 없으니, 내가 원하는 답을 스스로 정하고, 그 답을 증명해 내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을 알아서 찾고 경험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중학생쯤 되면 이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배운 많은 지식들 중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스무 살쯤 된 딸과 아들이 그 책을 읽고 바로 뭔가를 깨닫고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빠가 살아온 삶에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조금은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지금 내가 부모로서 아이들의 삶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더 중요한 그 책에 적는 내용보다 아빠가 먼저 삶에서 그 내용을 증명해 주는 것일 테지만.


당연히 내가 정한 삶의 답(목적지)이 아이들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목적지까지 어떤 식으로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가장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책을 읽는 여러 이유 중에서도 비중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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