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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06. 2024

#_4월 6일에 만나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초등학교 4학년이 끝나고 5학년으로 올라가던 날.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재미있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헤어지지만, 4학년 6반 친구들과는 매년 4월 6일에 학교에서 만나자고요.

몇 명이 올진 알 수 없지만, 그날 우리 반을 기억하면서 올 수 있는 사람은 와서 만나면 어떻겠냐고요.

사실 5학년 6학년이 되어서도 같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4월 6일에 학교에 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날짜를 정해서 만나자는 약속 자체가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졸업하고 나서도 그날에 맞춰 학교를 가본 적도 있었고요. 물론 정확한 시간 약속을 한건 아니라서 같은 반 친구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어릴 때는 그렇게 거대하게 느껴졌던 학교가 참 아담하고 작구나 하고 느낄 뿐이었죠.

어린 시절 살던 아파트와 그 앞 놀이터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여러 가지 기억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같은 장소에 가도 그때의 마음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달라진 세월의 흔적을 확인할 뿐이지요.


이제 30년이 훌쩍 넘었고, 대부분의 친구들 얼굴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유독 4월 6일이라는 날짜만큼은 매년 선명한 느낌입니다.

이제는 저의 아이들이 그때의 저보다 더 커버렸는데 말이죠.


눈을 감으면 잠시 그 시절의 학교 풍경이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모래운동장 옆으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울창했던 그 풍경들이 말이죠.

그 나무 아래 쉼터처럼 마련된 나무 의자와 까르르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지금은 운동장을 완전히 다시 공사해서 그때의 풍경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내 마음속 풍경 안에서 잠시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가만히 학교를 바라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아침 조례를 했던 장면도, 운동회를 하면서 박 터트리기를 했던 장면도 스쳐갑니다.


저는 기억력이 나빠 예전 일들을 대부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런 추억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고 아름답습니다.


언젠가는 또 한 번 직접 가게 되겠지만, 설령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4월 6일에 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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