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Apr 07. 2024

#_일요일의 도보여행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

아내가 운동삼아 주말에 좀 걷고 싶다고 해서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갈까 물어보니 꽃을 사러 터미널에 있는 꼭도매상가를 가자고 한다. 지하철 세 정거장 정도의 거리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보다 더 먼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으니 걷는 건 문제 될 게 없지만, 뭔가 낯설다.

터미널쪽으로는 밤에 차가 끊긴 시간 외에는 걸어 다녀본 적이 없어서다. 그 어색한 낯섦을 어깨너머로 애써 날려버리고, 길을 걷는다.


익숙한 거리를 걸을 때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여행온 거라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하곤 한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걷다 보니 금세 터미널 근처에 왔다. 반포역에서부터는 지하로도 연결되어 있어서 지하상가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금방이다.


꽃도매상가는 낮 12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얼른 꽃집부터 찾아가 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도매상가 전체가 깜깜하다. 아직 오전 10시도 안 되었는데, 오늘은 일찍 닫은 건가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경비원 한 분이 오셔서 일요일은 휴일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이런 허탕이다. 꽃 한 다발 안고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영 힘이 빠진다.


아내가 스타벅스 쿠폰이 있다며 근처에 있으면 가서 커피 한잔 하자고 한다.

뭐, 터미널에 스타벅스야 여러 군데 있으니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가서 시원한 커피 한잔과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렇게 커피 마시고, 터미널 파미에스테이션에서 이전에 가본 딤섬집에서 점심도 먹고, 다시 그 옆 카페에서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고 다시 집으로 출발한다.


요즘 체력이 많이 떨어진 아내는 올 때 좀 힘들어해서 틈틈이 쉬어주면서 여유 있게 걸어왔다.

산책 삼아 오전 9시에 나왔는데, 집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었다. 거의 반나절을 도보여행을 한 셈이다.

만약 이곳이 외국이었다면, 매우 근사한 도보여행이라고 느꼈을 테지만.

여긴 우리 동네고, 나에겐 매일 다니는 길조차 그렇게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안다.

삶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오늘도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그 평범한 시간들이 내 삶을 채워간다. 행복은 늘 이 아무렇지 않은 평범함 속에 숨어 있다. 다만 그걸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발견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_4월 6일에 만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