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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20. 2019

#_시간의 밀도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

함께 보낸 시간과 함께한 추억은 다르다. 6년 동안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 친구가 있다. 같은 반이었다고 해서 그 친구와 함께 한 6년의 시간이 모두 다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다. 3학년 때만 같은 반이었다가 4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간 친구가 있다. 그 친구집에 놀러가서 밤늦게까지 건담 조립하고 놀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또렷하다. 그 친구와 보낸 시간은 비록 1년이었지만,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만나는 사이다. 


추억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에 따라 좌우된다. 1시간을 같이 보내더라도 그 시간에 밀도가 강할 때 그것은 추억이 된다. 아내를 만나 함께 보낸 수많은 날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날임에도 가장 선명한 기억은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이다. 그날 내가 느낀 시간의 밀도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역시 내가 느끼는 인식의 강도에 따라 시간도 다르게 흘러간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

꼭 물리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보통 시간의 상대성은 체감적 길이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의 밀도다.


아침에 명상을 하고 필사를 하는 날이 있다. 필사는 책 한 쪽을 하는데 보통 15분정도 걸리는데, 그 시간의 밀도는 동영상을 시청할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필사할 때 시간이 느리게 가고 그 밀도가 매우 높다. 그렇게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가 한층 길게 느껴진다. 의도하지 않게 시간이 무심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잠시 5분만 시간을 내서 명상앱을 켜고 눈을 감는다. (insight timer를 추천한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보내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한정된 내 삶을 밀도있게 살고 싶다.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밀도있게 만들어주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그 만남의 기억이 한장의 사진처럼 밀도있게 기억된다. 그와 보낸 시간은 짧게 느껴지지만 그 사람과 나눈 이야기, 그 사람의 표정, 눈빛이 뚜렷하게 기억된다. 함께 한 몇시간이 잊지못할 기억으로 하나씩 캡쳐된다. 그런 만남을 우리는 좋은 만남이라고 느낀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통해 말한 것처럼 중력의 크기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우리의 삶도 그 시간을 보내는 내 마음 속 중력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다.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모두 똑같은 시간으로 보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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