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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24. 2019

#_정리정돈이 필요해

정리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리벽 수준의 정돈된 환경을 추구했다. 예를 들면 공부할 때 책상 위에는 지금 보는 책과 펜, 색연필 한 자루만 올려놓고 했었다. 나머지는 모두 책장과 서랍 등의 정해진 ‘제자리’에 있어야 했다. 대체로 삐뚤거림 없이 각이 딱 떨어져야 마음이 편했다. 결혼한 후의 나는, 정확히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나는 서서히 어질러진 환경, 무언가 쌓여있는 공간에서도 덜(?) 불편해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 이제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필요한 게 많아진 만큼 불편한 것도 많아졌다. 이제 예전처럼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나는 요즘이다.


정리정돈은 말 그대로 정리와 정돈이 합해진 단어다. 정리는 ‘이것이 꼭 필요한 물건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즉, 꼭 필요한 것만 빼고 버리는 것이 정리다.

정돈은 정리하고 나서 남은 것들을 꼭 필요한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다.  

정리정돈을 잘한다고 하면 대체로 정돈을 떠올리기 쉬우나 진정한 고수는 정리부터 잘하기 때문에 정돈할 물건 자체가 많지 않다. 평소에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습관만 들여놓으면 굳이 애써 정돈할 일이 없어진다. 그러니 그들은 늘 힘들이지 않고도 깔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정돈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리정돈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즉, 불필요한 것을 버리지는 않고, 늘어나는 물건들을 어디에 놓을까만 고민하는 것이다. 버리는 물건은 없고, 사는 것은 조금씩 늘어날 테니 점점 수납공간이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

만약 미니멀한 삶까진 아니더라도 정리정돈된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기꺼이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정리 안 된 상태에서의 정돈은 결코 오래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리를 못하는 사람일수록 정리하는 걸 힘들어하게 되고,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하기 싫어지고, 미루게 되고, 그러다 물건은 점점 쌓이게 되면서 스스로 참을 수 없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핵심은 버리는 것이다. 옷장을 한번 열어보라. 지난 1년간 한 번도 안 입은 옷이 몇 벌이나 있을까? 살 빼면 입어야지, 혹시 무슨 일 있을 때 입어야지 하고 놔둔 옷들이 옷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거다. 나머지 30% 중에서도 입는 곳은 늘 정해져 있다. 어디 옷뿐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새로운 가족이 생겼기 때문에 새로운 다양한 물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버리는 게 없으면 무조건 쌓이게 된다. 쌓이기만 하고 버리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문제는 ‘왜 버리지 못하는가?’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작위 편향성(omission bais)’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작위 편향(不作爲偏向)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손실보다 했을 때 발생하는 손해에 훨씬 민감한 심리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를 했을 때 사람들은 손해가 나도 잘 팔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팔지 않고 기다려서 더 큰 손해가 나는 건 견디기 쉽지만, 내가 팔아서 손해를 결정짓는 행동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버리지 않고 쌓여가는 것은 쉽게 견딜 수 있지만, 행여 물건을 버렸다가 후회하는 상황은 견디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작위(행동하는 것)가 더 많은 후회를 초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위(행동하지 않는 것)가 훨씬 더 많은 손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 내가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손해는 작위에 의한 손실이지만,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손실은 부작위에 의한 손실이기 때문이다.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는 건 용납할 수 없지만, 아무런 도전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손실은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하나 버리는 사소한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작위를 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로운 각오를 다질 때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불필요한 물건을 싹 버리거나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 변화를 위한 작위(作爲)를 결심하는 건지도 모른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이전 삶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먼저 제거할 때 가장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비밀은 늘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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