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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ug 19. 2019

#_하루키를 만난 날

책이든 사람이든 만남은 이토록 운명적이다

하루키의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는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소설은 첫 문장과 첫 페이지에서 책값을 다해야 한다. 독자에게 나머지 이야기는 덤일 뿐이다.”

내가 태어나고 6개월 뒤인 1979년 5월에 탈고된 그의 데뷔작. 그리고 그 주인공의 생일은 나와 같은 12월 24일이다. 그저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마침 이 소설 속의 주된 배경이 되는 날씨가 지금과 같은 한 여름의 폭염 속이었고, 마치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처럼 시간은 나사처럼 한 바퀴 돌아 지금 내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이든 사람이든 만남은 이토록 운명적이다. 사실 운명적이지 않은 만남 따윈 없다. 그저 그 운명을 일상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일 뿐.


어쨌거나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문장은 이렇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4줄 뒤에 또 한 번 반복한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떤 글도 완벽하지 않다. 다만 조금 더 공감되거나 때론 조금 더 신기할 따름이다. 어떤 글은 머리를 건들이고, 어떤 글은 마음을 노크한다. 어떤 글은 심장을 후벼 파고, 어떤 글은 온 몸을 간지럽힌다.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하루키의 글을 읽다보면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문득 첫 문장이 떠올랐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래도 사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사는 게 나빠도 죽는 것만큼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케이는 잠시라도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였는데, 잠시 내려가는 동안 오히려 숨 막히게 덥다는 생각만 들었다.”

쓰고 나니 부끄러워서 지우고 싶지만, 그냥 남겨두려 한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요즘 자꾸 하루키가 말을 건넨다. 언젠가 실제로 만난다면 서로 별말 없이 맥주한잔 마시면서 재즈음악을 들을 것만 같다. 날은 덥고 글은 차다. 강의를 마치고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계속 읽어서 인지 하루키의 문장이 에어컨 바람처럼 셔츠 안쪽으로 서늘하게 스며든다.




이미지 출처 : GQ코리아 무라카미 하루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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