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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11. 2024

#_부끄러운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사실 당신을 항상 응원한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딱히 어리다고 느끼지 않고 친구처럼 지내는 책벗이다.

그 친구와는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주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열심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애쓰는 그 친구의 모습을 질투하며 끌어내리려는 듯한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년 11월이라 벌써 5달 전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그런 뉘앙스로 말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고 섭섭했다면, 아마도 그게 맞는 말일 거라 생각한다.


원래 가해자는 모르는 법이니까.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 날아가 상처가 되는지 말이다.

나는 뜻하지 않은 가해자가 되었다.

그 친구의 소중한 하루를 엉망으로 만들고, 그 이후에도 종종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그 당시에 바로 말해 주지 않은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그래, 분명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훨씬 젊고 자유분방하게 일할 수 있는 그 친구를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의식적으로 일부러 그런 말을 했을 리는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배가 아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응원해야 마땅한 이야기에 '그렇게 하는 건 쉽지 않다'는 식으로 넌지시 걱정을 빙자한 돌을 던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내가 했던 여러 가지 말들을 떠올리며 나에게서 어떤 불안함을 봤다고 했다. 

아마 나의 질투의 원인을 '불안'으로 해석한 게 아닐까 싶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삶은 늘 불안한 것이니까. 카뮈의 말처럼 세상은 부조리하니까.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상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하는 말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본인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설령 그 이야기가 내 기억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한번 깊이 생각해 봄이 옳다고 믿는다.

나는 완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 투성이라 순간순간 나 스스로도 부끄러운 못난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안다. 


정신의 첫걸음은 허위와 진실을 구별하는 데 있다.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한 것처럼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내 기억과 다른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구별해 내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타인이 나의 못난 모습에 실망할까 전전긍긍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조차 온전히 솔직할 수 없을 때도 많으니까 말이다. 


아마 같은 나로 살아가도 타인이 인식하는 나는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거다.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인 내가 보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우수에 찬 내가 보일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이건 무엇을 봤든 그 모습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어떤 모습도 정확히 '나'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반대로 어떤 모습도 내가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보기 싫은 모습일지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려 한다.

못나고 부끄러운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든다.

이미 사과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나의 못난 모습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 본다. 그리고 늦게나마 이야기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도.

덕분에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되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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