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다 기억하지 않아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스쳐간 텍스트의 흔적들은 모조리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어봐야 기억나지 않아 왠지 책 읽을 힘이 안 난다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깊이에의 강요>에서 문학적 건망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이기 때문에 우리가 읽은 것이 의식 깊이 들어오더라도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어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책을 제대로 읽을 때는 그 행위 자체가 우리 내면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때론 집중하지 못하고, 실제로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스쳐가듯 읽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자책할 필요 없고, 누구나 그런 겁니다.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라면 또 읽으면 됩니다.
또 읽어도 까먹을 수 있으니 중요한 내용은 따로 메모해 두면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건 책을 읽으면 느낀 것을 한 가지라도 직접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몸으로 체험한 지식은 오히려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부디 책에서 자유로워지세요. 독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강박과 편견들을 지금 다 내려놓아 보세요. 정말 마음이 홀가분해지실 겁니다. 마치 거액의 주택담보대출이나 카드빚을 다 상환한 것보다 더 큰 해방감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진짜 좋은 독서는 바로 그 자유롭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을 거치며 성적으로 평가받아온 무의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저도 오랫동안 그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안 읽은 책을 누가 읽어 봤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웠고, 책을 느리게 읽는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모자라게 느껴졌고, 책을 다 읽었음에도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현실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인해 어떤 의무감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에서는 얻을 수 없는 책만이 주는 유익함이 좋아서 한 권씩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읽은 책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는 자기만의 패션 같은 거라고 말이죠.
옷이라는 게 어떤 단계까지는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는 것이고, 어떤 단계까지는 사회적인 예의와 규범으로 입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기본적인 단계를 넘어서면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입으면 되는 것처럼, 독서도 그렇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선 나에게 맞지 않는 너무 작은 옷이나 너무 큰 옷은 버려야겠죠.
(내 수준과 맞지 않는 너무 쉽거나 어려운 책은 제발 읽지 마세요. 과감히 덮으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입는 기본적인 옷들(셔츠, 청바지, 재킷, 블라우스, 스커트 등등)은 하나씩 갖추고 있되 여러 번 입다 보면 자연스럽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자신과 잘 어울리는 옷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에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 등을 찾아서 읽다 보면 나에게 잘 맞는 스타일의 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좋아하는 브랜드가 생기기도 하죠.
(책 역시 좋아하는 작가나 출판사가 생기게 됩니다.)
모두가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입을 필요 없겠죠. 중요한 건 나에게 잘 맞는 옷을 발견하고, 나에게 필요한 옷을 사서 입는 게 핵심일 거예요. 겨울에는 따뜻한 옷이 필요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옷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온도에 따라 흥미로운 책도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 때는 소설에 푹 빠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에세이나 시집에 심취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또는 자기 계발이나 경제경영 도서가 재미있어지기도 하니까요.)
이처럼 독서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인데, 마치 어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으라고 스스로를 심리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내가 필요한 것만 책에서 얻으면 꼭 다 읽고 안 읽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데, 독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그렇지가 않거든요. 누군가에게 '나 그 책 읽어봤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싶은 무의식이 존재하는 겁니다. 정말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못하면서 말이죠.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게 제 독서의 가장 큰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막연한 타인의 시선에 나를 가두지 않고, 그저 내가 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내가 원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마음껏 만나보기로 한 것이죠.
결과적으로 저는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이전의 저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발견한 가장 쉽고 확실한 꿀팁 하나를 공유해 봅니다.
매일 새로운 책을 한 권 이상 펼쳐서 읽고 싶은 부분만 아주 잠깐이라도 읽어 보세요.
절대 다 읽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읽고 싶은 부분만 자유롭게 조금씩 읽어 보는 겁니다.
그런 독서가 무슨 소용 있냐고 반문하실 수 있는데요. 질문은 2~3주 정도만 참아주시고, 그냥 한번 그렇게 우선은 다양한 책 중에서 내 마음이 끌리는 책들을 자유롭게 만나 보세요.
단언컨대 그런 과정에서 반드시 한 권 이상 완독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다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다 읽지 않고는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책, 심지어 그 책을 다 읽고 그 작가의 다른 책, 다른 글까지 다 찾아보게 만드는 그런 책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 순간이 여러분 독서의 첫 번째 변곡점이 되어줄 겁니다.
'아, 이런 게 내가 잊고 있었던 진짜 독서였지'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감정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존에 책과의 거리가 얼마나 가깝고 멀었냐에 따라 그 시기는 천차만별일 수 있겠네요.
저는 아무도 이런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혼자 방황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방법이라 참 오래 걸린 것 같은데,
아마 이렇게 대놓고 실험해 보면 여러분은 생각보다 금방 그런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처음의 주제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는 책을 읽어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잘못되었냐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다행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걸 생각해 보세요.
지난주에 만난 사람과 저녁을 먹으면서 했던 이야기 다 생각나시나요? 지난달은요?
어딘가 기억의 파편들이 남아 있긴 하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일부 단편적인 추억만이 남을 뿐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단지 이왕 만나는 거 좀 더 의미 있게 만나기 위해 계획도 세우고, 흔적도 남겨 놓으면, 아마 훨씬 더 기억나는 게 많아지겠죠. 독서도 그렇게 하면 그뿐입니다. 방법은 이미 넘치도록 많습니다.
중요한 건 책을 만나는 당신의 마음가짐입니다.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해야만 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망각은 축복입니다.
어차피 잊어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건 어차피 다시 배고파질 거니까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어차피 죽을 건데 살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