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정원 가꾸기
가급적 매일 글을 쓰려하지만, 때로는 참 뭘 써야 할지 쓸 말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뭔가 커다란 양동이에서 물을 퍼주다가 어느 순간 다 떨어져서 바닥까지 바가지로 싹싹 긁어서 써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날은 뭘 써야 할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무언가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어떻게든 붙잡아 놓고 싶은 마음에 키보드를 두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 동안 글감이 되는 주제에 풍덩 빠져 헤엄치기도 합니다.
가끔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을 때면, 전혀 다른 제 글의 두 얼굴을 보게 됩니다.
'아니 이땐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라고 생각될 만큼 깊이 있고 풍부한 감성으로 써놓은 글을 발견하는가 하면, '아, 이 글은 그냥 지울까?' 싶을 만큼 별 내용 없는 글도 만나게 됩니다.
마치 풀메이크업과 상반되는 민낯을 보여주는 영상처럼 그 차이가 제법 많이 나곤 합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때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의 차이가 가장 크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책을 만나면 그 책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책을 통해 내 안에 새로운 샘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느낌입니다. 눈으로 읽고 마음에 닿은 문장들이 마중물이 되어 내 속에 있던 수많은 생각들을 쭉쭉 길어 올릴 수 있게 됩니다. 책을 읽다 더 이상 읽기 힘들 만큼 내 마음을 붙드는 문장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 멈춰 책을 덮고 생각하고, 글로 쓰는 순간을 만납니다.
언뜻 생각하면 그렇게 쓴 글이 진정한 내 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피카소는 수많은 선배화가들의 화풍을 완벽하다고 할 만큼 모사해 냈고 결국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른 작가가 남겨놓은 좋은 글들을 수없이 읽고 쓰며 내 몸과 마음을 관통시킨 후에야 비로소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제가 썼던 모든 좋은 글 뒤에 좋은 책과 좋은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건 충분히 좋은 영양분(책)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반증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나에게 어떤 영혼의 밥을 주었는지, 나에게 어떤 영혼의 휴식을 주었는지 돌아봅니다.
내가 길어 올린 맑고 투명한 문장들이 내 마음의 정원 속 연못이 되어
매일 그곳에서 찬란한 하루의 햇살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도 잠깐이나마 책을 읽으며 내 정원 한쪽 귀퉁이에 작은 씨앗을 심고,
글을 쓰며 어디선가 무성히 자라난 생각의 가지들을 다듬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