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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Oct 10. 2024

#_이토록 완벽한 하루 :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이순간 내 삶의 코모레비를 생각하며.

지인의 추천을 받아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관에서 한번 보고, 알 수 없는 여운이 남아 다시 영화를 다운받아 한번 더 봐야 했습니다.


주인공 히라야마 그 자체였던 야쿠쇼 코지의 연기와 칸느가 사랑하는 감독 빔 벤더스의 조합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스토리를 너무나 풍성하고 아름답게 풀어냈습니다.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매일 화장실을 청소합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넘게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의 루틴대로 살아갑니다.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양치와 면도를 하고, 자신이 키우는 작은 나무들에게 물을 주고, 청소복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합니다. 화장실에 도착해 청소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화장실 구석구석을 아주 꼼꼼히 청소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말이죠.

페펙트 데이즈 주인공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장면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충실히 채워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것이 마치 매일 더러워지고 어질러지는 우리 내면을 씻어내는 행위처럼 보였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면 목욕탕에 들러 자신의 몸도 깨끗이 씻고 뜨거운 탕에 몸을 깊이 담그는 모습과 아침에 일어나 처음 양치질을 하는 것까지 모두 내면의 풀어내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의 묶은 때를 씻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처럼 보여서 성스러운 느낌을 받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약간의 참회와 강박의 심리도 느껴졌습니다.


영화는 계속 주인공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줍니다.

마치 매일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우리 각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히라야마와 달리 젊고 철없어 보이는 동료 다카시는 출근하자마자 열심히 청소하는 그에게 어차피 금방 더러워지는데 대충 하라고 말합니다.

다카시는 히라야마의 삶의 태도의 대칭점을 보여주는 인물로 모든 사건에 10점 만점에 몇 점이라며 점수를 매깁니다. 의도된 연출이겠지만, 모든 일을 평가하고 좋고 나쁨을 규정짓는 세대를 풍자하는 듯합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세상을 탓하기를 일삼습니다. 그에 반해 주인공 히라야마는 매일 아침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차에 타기 전에 매일 습관처럼 자판기에서 뽑아서 마시는 커피이름이 BOSS인 것도 우연인지 연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의 주인 됨을 잃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주인공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히라야마는 점심시간이면 화장실 근처 사찰에 올라 나무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올려다보면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습니다. 아침에 늘 챙겨 나오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그 찰나의 반짝임을 남깁니다. 그렇게 매일 찍은 사진들은 주말에 현상을 맡기고, 이전에 맡겼던 사진을 찾아와 남기고 싶은 사진들을 골라 각각의 매월 다른 박스에 담아 보관합니다.


영화 중간중간 파란 하늘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장면들은 제 눈과 마음도 정화시켜 주는 듯했습니다.

히야라마는 과묵한 캐릭터라 극 중에서 말수가 참 적습니다. 첫 대사가 영화시작 13분 후에 나옵니다. 그 대사가 마침 길을 잃은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는 일인 것 역시 멋진 연출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정작 말 걸어야 하는 대상은 우리 내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아이이지,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며칠의 반복되는 그의 일상 속에서 사실 우리 삶도 언뜻 똑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저 우리가 그 디테일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인 것이죠. 그런 우리에게 보란 듯이 이른 아침 화장실 청소를 나서는 히라야마는 집을 나서며 또 하늘을 보고 미소 지으며 BOSS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작은 청소차를 몰고 일터로 나갑니다.


완벽한 하루는 아무런 걱정도 괴로움도 없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가득한 날이 아니라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때론 즐거운 일도 있고,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그런 모든 순간이 어우러진 결과물임을 말해줍니다.


영화는 어떤 사건이나 스토리에 포커스가 맞춰져있지 않습니다. 도무지 주인공은 왜 화장실 청소부가 되었는지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지 않죠. 다카시의 여자친구가 등장하고, 자신의 조카가 가출해서 갑자기 찾아오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런 사건들보다는 히라야마가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는 태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여러 일들도 짐작해 보건대 주인공에게 어떤 사연이 있고, 그에게는 여러 가지로 해석가능한 불안과 고독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일 밤 잠에 들고나서 마치 꿈처럼 보이는 흑백의 영상들은 낮 시간의 풍경과는 대비되면서 오직 명암의 대비로 보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다소 난해한 꿈의 장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해 주인공 내면의 불안과 고독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첫 번째 꿈에 나오는 책 속 단어 '그림자 영(影)'


특히 마지막에 그림자가 겹쳐지면 더 어두워지는가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그림자를 겹쳐 보이는 실험을 하고, 함께 대화하던 사람과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며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그림자를 인생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고 있고, 그런 부분들은 꿈이나 현실 모두에서 명암으로 대비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하지만, 알다시피 그림자는 몇 개가 겹쳐지더라도 더 어두워지지 않죠.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올 때도 있고, 지치고 외롭고 불안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그림자는 밝은 빛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반작용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끝난 뒤에 가장 마지막으로 나오는 "코모레비"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끝나고 마지막 장면에는 마치 영화의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하듯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일렁이며 비치는 햇살을 의미합니다.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기에 아름답고 눈부십니다. 만약 바람이 불어 일렁이지 않는다면, 나무에 가린 그림자가 없이 그저 햇살만 쏟아질 때는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죠.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을 바라봐야 할지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그림자밟기 놀이를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림자라는 어두움의 상징을 놀이를 통해 승화하는 장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그림자도 결국 삶의 일부분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삶의 흉터가 되기도 하고, 무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어둠이 없이는 빛을 증명할 수가 없고, 못난 과거가 있어야만 찬란한 미래도 만들어지는 법이니까요.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강물이 어차피 바다로 흘러간다고 해서 의미가 없어지지 않듯이, 지금 내가 어떤 물줄기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지금은 지금이고, 다음은 다음이니까요.


하나하나 디테일을 들어가면 끝도 없을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하는 것이 감독이나 배우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 있지만, 그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여지를 주기 위해 애써 더 담백하고 정갈하게 연출해 낸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처음엔 설명이 없어서 불친절해 보였지만, 다시 보니 그런 불친절이 관객의 다양한 해석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놓치고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해 다양한 음악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부분도 참 좋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MZ 세대들이 더 아날로그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러할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시대였으니 그들에게 아날로그는 구식이 아닌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4:3 비율로 만든 것도 고집스러우면서 멋스러운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무엇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과 어떤 부분은 일치하고, 어떤 부분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다 이해한다는 건 없으니까요.

나의 나약한 삶을 자꾸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위로보다 더 담백하지만 뜨거운 무언가를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주인공의 삶 속 미소와 눈물 역시 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건 내 삶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들을 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각자의 물줄기가 되어 바다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말이죠.


거창하게 영화 한 편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삶의 의미가 조금 희미하게 느껴진다면 고민 없이 2시간만 히라야마의 삶을 엿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추천해 봅니다. 무엇을 보고 느끼는 건 다 저마다의 몫일테니까 말이죠.

영화든, 책이든, 사람이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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