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 게으름에 대하여
12월부터 바쁘기도 하고 신경 쓸 일들이 많아졌다. 그 와중에 새로운 트레이너와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몇 달간은 수업을 연기하거나 빼먹은 일이 없었는데, 쌤이 바뀌고부터는 5번 수업받는 동안 한 번은 연기하고, 한 번은 결석하고 말았다. 아무리 바빠지더라도 일정에 변수가 많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를 제대로 컨트롤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변명거리는 많다.
연말연시라 바빴고, 아내가 폐렴에 걸려 고생하면서 뜻하지 않게 가족들을 챙겨야 할 시간이 늘어났고, 회복될 무렵에는 휴가를 가게 되었다. 결국 원래 하려던 일정과 계획에는 차질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크게 느끼는 건 변수가 좀 있다고 하려던 일을 못하는 것만큼 비루한 변명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듯 삶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오늘 열흘 만에 운동하러 헬스장에 갔다. 작년 8월 이후 가장 긴 공백이다. 앞서 말한 대로 12월부터 일주일에 1-2회밖에 운동을 못했고, 그조차 운동강도는 이전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었다. 오랜만에 인바디 검사를 해보니 근육량은 줄어들고, 체지방은 늘었다. 예상은 했지만 알면서도 아쉽다. 역시 공짜 점심은 없다. 운동을 열심히 한 몇 달간은 꾸준히 몸이 좋아졌고, 반대로 운동을 게을리한 한 달 뒤엔 몸이 나빠졌다. 실망할 일은 아니다. 그저 공식 같은 거니까.
만약 운동을 게을리했는데도 몸이 좋아졌다면 그게 더 두려운 일이다. 내가 아는 이치와 다른 결과니까.
그래서인지 오히려 한 계단 내려와 다시 올라갈 계단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내 생각과 달리 내 행동은 실질적인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생각은 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은 사실 행동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하지 않았던 일일 뿐이다.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깨달음이 하나 있다.
나는 내 생각을 나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행동을 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에 나는 행동하지 않고 그저 생각만 했으면서 사람들이 나를 몰라준다거나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어리석고 우물 안에 갇힌 생각인가. 다행히 지금은 안다. 나는 내 생각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행동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행동하지 않는 생각은 그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자꾸 내 생각을 최대한 배제한 채 행동을 보려 한다.
지난 한 달간의 결과적 게으름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변명의 여지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건 내 상황이고 내 생각일 뿐이다.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그 변명으로 해명할 수 없는 기회나 가능성은 존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게으름이 되었다면 '어쩔 수 없었다'가 아니라, '어떻게 개선할까'로 바라보는 게 현명한 자세 아닐까.
바쁜 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바쁨이기에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한단 말인가.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은 타인이 아닌 내 삶의 일부이므로 예상가능한 범주에 넣어두어야 한다. 이제와 돌아보면 휴가 가서도 헬스장에서 조금 더 타이트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휴가 와서까지 운동하고 싶지 않은 안일한 생각이 내 행동을 가로막았을 뿐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나에게 더 중요하고 해야 할 일들을 못했거나 미루어졌다면, 그런 아무리 바빴어도 결과적 게으름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그나만 위안을 삼고 싶은 부분도 있다.
비록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그동안 해왔던 것들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몇 달간 열심히 운동을 했다면, 한 달 안 했다고 다 사라지지 않는다. 몇 달간 열심히 글을 썼다면 잠시 글쓰기를 멈추었다고 이전과 같아지는 건 아니다. 그동안의 행동과 그로 인한 시행착오가 하나의 세트가 되어 삶의 궤적을 남긴다. 이후 그 궤적을 지침으로 삼고 나아가느냐 그 궤적에 머물러 반복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과적 게으름을 개선하면 결과적 성장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1월 말에 다가오는 설연휴에 앞서 이렇게 미리 스스로 예방주사를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