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죽음이라는 단어는
아직 너희들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죽고,
언제 죽을지는 누구도 모른단다.
그런데, 죽음을 꿈꾸라니,
하늘소망을 꿈꾸라니
좀 어려운 문장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죽음과 하늘소망을 시시때때로 생각하며 살아가면
후회를 줄이는 길이 될 수 있기에
죽음과 하늘소망에 관한 글을 남겨보려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죽음이 있다.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자라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죽음들은
그 어느 것도 같은 모습이 없더라.
죽음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건,
너희들이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찾아온
아빠의 암이 그 계기였어.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암'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서늘하게 느껴져.
그만큼 큰 일이었지.
너희들을 만나기 전의 엄마는
가끔 죽음을 생각하고, 서랍 정리도 틈틈이 하였어.
죽은 후의 내 물건들을 정리할 상황도 상상했지.
어쩌면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
열심히 살았고, 후회도 미련도 없다 생각했었다.
그러다 너희들을 만나고 나니
죽음을 피하고 싶어졌어.
생각도 하기 싫었지.
오래도록 너희들 곁에서
너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커져버린 탓이었다.
큰 사랑은 이토록 사람을 변화시키더라.
너희들을 만나고서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속담을 이해하였고,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이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지.
아빠의 암은 건강검진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비교적 초기에 발견한 것이었지만
암은 암이었다.
전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암은 암이었다.
가족력이 있고,
암 덩어리 자체가
전이가 있어 보이는 모양과 크기였기에
수술 후 항암을 8차까지 하는,
암은 암이었다.
그 기간, 엄마 기억이 흐릿해.
씩씩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세세하게는 기억을 못해.
아마 잘 버텼지만, 힘들긴 했었나봐.
아직 어린 너희들 너무 눈에 밟히고,
수술과 항암을 하는 아빠 앞에서 울 수 없고,
엄마는 남편이 아픈 거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아픈 거잖아.
육아를 도와주시는 너희들의 할머니 앞에서
마냥 씩씩할 수도, 울 수도 없었지.
너희들의 외할머니나 이모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단 한 곳에선 울 수 있었어.
바로 교회, 기도하는 자리, 예배하는 자리였다.
울며 기도하며 찬송하며,
그렇게 죽음을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멋지게 죽어가고 싶어졌다.
하늘나라에 가서 근사하게 지내고 싶었고,
너희들에게도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믿음을
꼭 가르쳐주고 심어주고 싶었다.
죽음, 멋진 죽음을 꿈꾸니
오늘 지금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늘소망을 꿈꾸니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하지 않게 되었다.
너희들도,
너무 늦지 않게
죽음과 하늘소망을 꿈꾸길 바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지혜롭고 현명하게 받아들여
멋지게 살아가고, 멋지게 죽어가는
우리 가족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