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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기간 : 반평생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 - 손익판단을 바로바로 할 수 없다.

by 사랑예찬

결혼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회계’, ‘손익’ 이런 단어가 나오니

좀 이상하지요?


왜 다른 일들보다 결혼생활이 더 힘들까를

고민해보고 있는 요즘,

문득 결혼생활이 어떤 부분이 손해이고 이익인지가 참 불분명하다, 판단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히 지금 생각하고 계산해 보면 손해인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꼭 손해는 아닌 것 같은 일들이 몇 가지 떠올랐거든요.


그러다 아, 이래서 결혼생활이 힘들었구나를 알게 되었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반반결혼’ 들어보셨지요?

요즘 결혼 트렌드라고 하더라고요.

결혼 준비할 때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고,

생활비도, 집안일도, 육아도 칼같이 나눠서 하는 결혼이라고 해요.


이게 얼핏 보면 ‘공평’해 보여요.

또 공평한 것은 ‘정의’로워 보이지요.

‘공평’과 ‘정의’.

이들이 얼마나 훌륭한 가치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요.


그런데, 결혼생활의 기반이 되는 ‘사랑’에서

‘공평’과 ‘정의’는

‘반반’과는 거리가 멀던데요.


사랑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해주고 싶고,

내가 못할 때는 미안하고,

못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 꼭 더 해주고 싶고,

내가 집안일이나 육아를 하는 동안 배우자가 친구를 만나고 들어와 행복해한다면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고,

배우자의 배려로 자유시간을 누렸다면 돌아와서 더욱 배우자에게 표현을 해주고 싶은 거 아닐까요.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하는 것도,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도,

배려해주는 것도,

그 배려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도 모두 사랑인데,

이런 사랑은 ‘공평‘과 ’정의‘와는 좀 결이 맞지 않아요.


이렇듯,

손해와 이익이 딱 ‘반반으로’ 맞아떨어질 수 없는 게

결혼생활인 것 같아요.




‘반반’이 트렌드라고 하니,

결혼생활의 손해와 이익을 판단해 본다면

이 또한 오래 걸리는 일인 것 같아요.


하루 이틀 같이 사는 사이가 아니고,

명확히 보이는 비용만 계산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결혼생활에는 비용뿐만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들어가요.


가장 객관적인 시간이지만, 손익계산을 할 때에는 좀더 면밀히 따져야 해요.

육아시간을 나눌 때, 아이가 낮잠을 자는 두 시간과 낮잠 없는 두 시간을 똑같이 계산할 수 없지요.

이걸 똑같이 하기 위해서는 매일 이것만 계산하고 있어야 할 거에요.


감정은 또 어떤가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조금 수월하게 넘어갈 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될 수 있어요.

이걸 어떻게 똑같이 ‘반반’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게다가요.

상황과 사정은 계속 변해요.


부모님들은 늙으시고, 아이들은 자라지요.

변한 상황과 사정은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지표들의 회계기간은

한 달, 반 년, 일 년 단위가 아니라

결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즉 ‘반평생’이에요.


지금 손해여도 시간이 흘러 이익인 일들도 있고,

이런 것들은 대부분 눈에 보지 않는 것들이고요.





제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저는 결혼하고 억울하다는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는 그 감정이 좀더 심해졌었는데, 그게 어느 순간 풀렸어요.

그건, 아이들이 엄마를 찾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믿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에요.


이런 감정을 진하게 느끼지 못하는 배우자가 조금 불쌍하기까지 하더라고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해

저보다 친밀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남편이

미웠다가 짠해지더라고요.


단기적으로 보면,

그 당시 육아에 제 시간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손해라고 단정지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배우자에게 더 분발하라고, 상황을 바꿔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아이들과의 높은 친밀도,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들,

나만 보았던 예쁜 모습들..

이런 것들은 너무 큰 이익이에요.

이건 앞서 손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 수준이에요.


5년 정도가 흘러 생각해도 이 정도인데,

배우자는 반평생을 함께 하는 관계잖아요.


이런 관계에서

손해와 이익을 판단하고,

심지어 그 판단을 바로바로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결혼생활을 좀더 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길게, 멀리 보면

손해와 이익보단 사람과 사랑이 보일 거에요.





이혼을 가까이에서 오래 보고

오히려 사랑을 예찬하게 된

이혼변호사 신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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