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무죄의 진짜 의미.
늦은 나이에 전공을 바꿔
법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나이 서른.
주변에선 걱정을 많이 했지요.
처음 공부할 땐,
일단 많이 봐야 했어요.
양이 워낙 방대했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기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남기려면
물을 진짜 많이 붓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마음 속에 의아함이 생겨도
그것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어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성실히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일단 들이 부었어요.
시험은 통과했고,
일은 시작했어요.
모든 게 원만한
‘해피엔딩’일 줄 알았어요.
일을 시작한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피해자도, 가해자도,
원고도 피고도,
신청인도 피신청인도,
피의자도 피고인도,
참고인도, 보호소년도,
채무자도, 채권자도,
행위자도,
고소인도, 피고소인도…
모두가 억울했고,
모두가 불만족이었어요.
법원에서의 모든 일은
‘만족’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특히, 형사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하여 사건을 진행할 때,
답답하다 못해 허무해지기 시작했어요.
피해자의 피해는
도저히 회복되지 않는구나,
이 정도면 오히려 법이 조롱하는 것 아닌가,
형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구나,
억울한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게 취지구나,
피해자들의 공허해진 눈동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 후 오히려
더 뻔뻔해지기도 하는구나.
이런저런 생각에 괴로웠어요.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잠시 송무를 멈추고
기관에 들어간 적도 있어요.
법의 세계에서 ‘무죄’란 ‘결백’이 아니었어요.
그저 혐의를 입증할 만큼의
적법한 절차로 수집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무죄’의 의미였어요.
많은 것들이 적법한 절차로 수집되지 않아서
증거가 되지 않았고,
구성요건을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해서 무혐의가 나왔어요.
수없이 많은 불법행위들 중에
증거가 있는 것도 별로 없고,
그 중에 적법한 절차로 수집한 증거는 더 적고,
구성요건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는 더 적다는 것을
눈으로 보니, 생각이 복잡해요.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저는 그걸 ‘사랑’으로 풀어보려고 해요.
그래서 필명도 ‘사랑예찬’이라고 지었어요.
법은 할 수 없는 것을
사랑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한번 꾸준히 밀고 나가보려고 해요.
무죄가 결백은 아니지만,
사랑은 많은 것을 엎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