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가지 위의 앉은 새

by 문효광

끝이 보이지 않도록 펼쳐진 흰 눈밭 위를,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내딛고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눈은 조용히 눌려 들어가며 낮고 무딘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이 광막한 적막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흔적처럼 남았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멎어 있었고, 하늘과 땅의 경계는 흐릿하게 지워져,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과연 세상인지 아니면 꿈속의 한 단면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던 풍경 속에서, 문득 하나의 형상이 시야에 걸렸다.

하얗게 덮인 세상 한가운데,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는 한 사람. 나는 걸음을 늦추고, 숨마저 조심스럽게 고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선비였다. 그러나 단순히 ‘선비’라는 말로 묶어두기에는 어딘가 설명되지 않는 기묘한 기운이 그에게서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의 옷깃은 푸르렀다. 겨울의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깊고 고요한 색이었다. 마치 얼어붙지 않은 어떤 기억의 잔상처럼, 혹은 이 차가운 세계와는 다른 계절에서 건너온 흔적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푸른 결 사이로, 분명히—아주 분명하게—붉은 빛이 스며 있었다.

핏빛처럼 선명하지도, 꽃잎처럼 화사하지도 않은, 그러나 눈 위에서는 유독 또렷하게 떠오르는 색. 그것은 번진 것인지, 물든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시선을 떼어낼 수 없을 뿐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더 기묘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그의 어깨 위에, 한 마리 새가 앉아 있었다. 새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날갯짓 한 번 없이, 마치 그 역시 이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혹은 시간 자체에 붙잡혀버린 존재인 것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눈송이는 새의 등 위에도, 선비의 어깨 위에도, 그리고 나의 머리 위에도 아무런 차별 없이 내려앉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셋 사이에는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열었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며 말을 꺼내려는 순간을 붙잡아 얼려버리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

그러나 그 물음이 향한 곳이 과연 선비였는지, 아니면 그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새였는지는, 나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둘 모두에게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 풍경 자체—이 끝없는 백색의 정적과, 그 속에 스며든 푸른 빛과 붉은 기척—그 모든 것의 이름을 알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침묵은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너무나도 완전한 형태의 답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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