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Stress Archive)
(Stress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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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앞의 망각 (2)
예민함은 조절하지 못했을 때 화를 부르기 십상이다. 실제로 근래 몇 번이나 화를 초래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친구 H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던 것이다. 앞선 글에서도 다뤘듯이 이미 한 번 H에겐 나의 나쁜 버릇으로 잘못을 저지른 전과가 있었다. 다행히 그의 넓은 포용력에 잘 마무리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만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왔는데, 문제는 그 편안함에 한껏 오만해진 내가 예민함을 터뜨려버린 것이었다.
당시 H는 취업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시기를 겪어봤기에 그 기간이 얼마나 숨 막힌지, 그래서 주변인의 배려가 충분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H와의 관계에 기대어 내 화를 몽땅 풀어버렸고, 그것은 H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굉장히 혐오하는 행동이었고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길 수 백 번이었건만, 미숙한 감정 컨트롤은 스스로가 망각하게끔 만들어 가장 되고싶지 않았던 유형의 인간이 되게 했다. 그날 밤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냈었는지 지금도 퍽 헤아리기가 힘들다.
그때 눈물을 마구 쏟아냈던 까닭은 비단 H에 대한 미안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와 맞닥드렸을 때의 좌절감, 그로 인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 자신, 종국엔 남한테 생채기를 내며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실망감. 그 외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뒤죽박죽 섞여서는 울지 않고선 버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돌이켜 본다. 물론 그게 정확한 이유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건 원초적인 이유는 스스로에게 있었고, 그것이 나 자신의 능력치, 즉 한계를 깨달은 순간과 긴밀한 연관이 있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을 듯하다.
요즘도 종종 그러한 순간에 봉착하곤 한다. 아무래도 일을 하며 제 능력을 드러내고 펼쳐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면 또다시 같은 딜레마에 빠지곤 하는데, 힘이 부치다 보니 해결할 마음도 크게 들지 않는다. 그저 끝없이 좌절하고 또 슬픔에 젖어있다가 기억이 희미해져 부정적인 일과 감정이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죄다 망각할 쯤이면 그제서야 천천히 다시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루틴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별로인 것도 아니다. 아직까지는 고통을 망각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음에 감사한다. 그렇지만 이 감사함조차 망각하기 전에 이 거지 같은 루틴을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로 지금처럼.
안녕하세요, 리타입니다. 2주 만에 '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로 찾아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꽤 긴 연휴가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주변의 감사한 분들 덕분에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보니 글감을 찾기가 어려워 연재를 하지 못했는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이 지닌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연재를 하나 더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목은 '아카이브 조각', 제목 그대로 자잘한 파편들을 모아가는 연재입니다. 파편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만들면 '나의 스트레스 아카이브'에 들어갈만한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마 자주 찾아뵐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좋은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