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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Nov 19. 2015

타자 예찬

 일상문학 열다섯 번째






언젠가는 누군가의 비꼬는 듯한 말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말을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아마 그 누군가 또한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또 언젠가는 10년 넘게 알고 오던 친구의 색다른 면을 보았기도 했더랍니다. 

그 친구의 눈물짓는 모습이, 정말로 처음이라서 당황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너를 많이 몰랐구나 하고. 


매년 생일은 인맥을 확인하는 날이 되어가는 것 같아 페이스북을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의미 없는 축하의 말들,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세어지는 좋아요 수들. 

그 모든 게 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니 남는 건 두 손에 세어질 만큼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사람은 왜 이리도 다른지, 나와 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는 건지 

나와는 다른 '타자'들로 가득한 세상에 

절망하고

후회하고.


'타자'란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요. 

나는 평생 제대로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실이 어느 날은 참 살아갈 힘을 앗아가더랍니다. 


어느 날이었던가 찰랑거리는 머리를 휘날리며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람을 보고

내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평생 내 뒷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온전한 모습조차 보지 못하고 죽는 그런 바보 들인 겁니다. 


그런데 그 바보들이 고장 난 렌즈로 '타자'에게 다가서려 하다니요.

'타자'들에 둘러싸여서 살 수밖에 없다니요.

이 얼마나 슬프고 불쌍한 일인가요. 



모더니즘의 많은 작가들은 전후의 혼란한 상황과 급격하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타자'에 관한 자신들의 생각을 소설 속에, 시 속에 녹여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카프카, 조이스, 엘리엇, 등등 소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죠.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도 그 바보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약간은 다른 '바보'였습니다. 


    그녀의 단편 'Unwritten Novel'에 등장하는 '나'는 기차에서 자신의 앞에 앉은 여자를 보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대로 '미니'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됩니다. 미니는 지금 자신의 올케를 보러 가는 길이야. 올케의 이름은 힐다지, 오 그 젖소 같은 계집! 

    '나'는 점차 그녀의 이야기를 상상 속에서 써 내려가게 되고 나중에는 상상 속의 그녀가 실제의 그녀를 보는 것을 방해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런 일을 저질렀건 안 저질렀건, 또는 무슨 일을 저질렀건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나'에게 중요한 건   자신 앞에 앉아있는 여자가 아니라 '미니'였던 겁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지도를 짜 맞추던 '나'는 여자가 지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짜증을 냅니다. "미니, 내가 이 일을 완전히 끝낼 때까지는 제발 좀 움찔거리지 말아요......" 

    그러다 여자가 내리는 역에 이르러서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하며 소개를 시켜주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미니'의 속을 꿰뚫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자신 앞에 앉아있던 여자는 '미니'가 아니었던 거죠. 그 충격 속에서 '나'가 독백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표를 찾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은 길을 걸어간다. 나란히...... 이제 나의 세상은 끝났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딘가? 내가 아는건 뭔가? 저건 미니가 아니다. 모그리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나는 누군가? 삶은 뼈처럼 허망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지막 모습...... 연석에서 내려서는 그와 커다란 건물 모퉁이를 돌아 그를 따라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경이롭다. 신비롭다. 신비로운 사람들! 어머니와 아들. 당신은 도대체 누구에요? 왜 길을 걸어가는 거죠? 오늘밤에는 어디서 잘 거예요? 그리고 내일은? 경이로움이 소용돌이치고 들이닥친다. 나를 하늘로 띄워 올린다!

나는 그들은 쫒아간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걸어다닌다. 하얀 빛이 탁탁 거리며 쏟아진다. 유리 진열장, 카네이션, 국화, 어두운 정원의 담쟁이덩굴. 문간의 우유 배달 마차. 어디를 가도 신비로운 사람들이 있다. 길모퉁이를 돌아가는 당신들, 어머니들과 아들들이 보인다. 당신, 당신, 당신...... 나는 걸음을 재촉하여 부지런히 쫒아간다. 이건 바다일 것이다. 풍경이 잿빛이다. 재처럼 침침하다. 바다가 살랑거린다. 내가 무릎을 꿇고 아주 오래 된 그 우스꽝스러운 의식을 올린다면. 내가 숭배하는 건 바로 당신들, 미지의 사람들이다. 내가 두 팔을 활짝 벌린다면 내가 끌어안는 건 바로 당신들이다. 경이로운 세상이다!

버지니아 울프 - 쓰지 않은 소설(Unwritten Novel)



울프는 '타자'의 '타자성'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소외를 느꼈죠. 그녀가 열심히 맞추던 '미니'의 지도는 조각조각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아니, 애초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진짜 여자를 마주했을 때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세상이 끝난' 것이죠. 


하지만 그 '이질성', 다르다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다는 것은 다시금 그녀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경이로움으로 들어 닥쳤습니다. "it's you, unknown figures, you I adore; if I open my arms, it's you I embrace, you I draw to me–adorable world!"









'다름'은 더 이상 소외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탐험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결코 잡히지는 않겠지만, 걸음을 재촉해 쫒아가면 시야에 놓을 수는 있겠죠. '다름'을 깨닫는 순간, 내 세상이 깨지는 순간은 공포의 순간이 아니라 경이로움의 순간인 것입니다. 






일상문학 숙제

1. '타자'를 느껴보자

2. '타자'를 느낀 순간에 대해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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