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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Jul 27. 2015

낯설게 보기

일상문학 네 번째



Formalist : 낯설게 보기




Roman Jakobson





러시아 형식주의 :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는

차이가 있다.


문학 언어는

낯설게 보게 한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죠? 저번주도 분명 비와 함께 한주를 보냈는데 새로운 한주의 시작도 비라니요.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꽉 막히는 출근길은 비가 오면 더욱 막막해집니다. 구두로 들어오는 빗물, 다른 사람의 우산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들. 버스 같은 경우는 바닥이 더욱 미끄럽고, 중심잡기가 더욱 힘들어지죠. 여름인데, 이제 겨우 7월인데, 앞으로 비가 오면 더 왔지 덜 오진 않을 걸 아는데도 비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불청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만나볼 예정입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보다도 더 불청객인 그 이름, 그들에게서 '낯설게 보는 법'을 배우려고요. 위의 정의는 제가 임의로 내린 쉬운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한 정의입니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길가다가 어떤 예쁜 여성을 보았을 때 우리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죠.


"야 10시 방향"

"뭐?"

"10시!"


이것이 바로 (남자들의) 일상 언어입니다. 물론 여성분들도 친구분의 옆구리를 찍으며 눈짓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일상 언어는 이렇습니다. 아니면 속으로 '워후!' 하려나요.




하지만 러시아 형식주의가 주장하기를 문학 언어는 이렇게도 일상 언어와 다릅니다.


바람이 날리는 듯했으나 나는 한순간 그 바람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숨결, 그 여리 하지만 강렬한 숨결이 내 시선을 잡아끈 한줄기 바람이었다. 그 온도, 후덥지근한 여름날에 약간은 선선한 그 바람의 온도가 나를 시원하게 했다.


10시 방향 예쁜 언니가

나를 돌아보게 만든 약간은 시원하지만 강렬한 숨결로 변한다는 거죠. 물론 결국 나의 마음을 끈건 언니의 얼굴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건 화자만 알고 있겠죠.


제가 좋아하는 오규원 시인은 누구보다도 재치 있고, 정말 손쉽게 '낯설게 보기'를 알려주는 시인입니다.



                          비



 비가온다. 대문은 바깥에서부터 젖고 울타리는

위부터 젖고 벽은 아래로부터 젖는다

 비가온다, 나무는 잎이 먼저 젖고 새는 발이 먼저

젖고 빗줄기가 가득해도 허공은 젖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시도 젖지 않는다





우리는 시인의 단어 하나하나를 쫓아가며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낸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비 오는 날 주택가를 지나가면서 보았을 그런 흔한 풍경입니다.




아마도 이런 풍경 이려나요.



하지만 시인은 비 오는 날 젖은 담벼락이라는 이미지를 해체합니다. 대문은 당연히 바깥에서부터 젖겠죠. 안쪽은 뭔가 비를 막아주는 것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대문이 바깥에서부터 젖는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무는 잎이 먼저 젖겠죠. 그리고 줄기가 젖고, 참새는 종종걸음을 하며 비를 피할 곳을 찾을지 모릅니다. 참새의 발은 여기의 물웅덩에서 저기의 물웅덩으로 뛰어가며 젖겠죠.



하지만 우리가 정말, 정말 생각하지 못한 것은

허공은 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가 올 때 당연히 하늘도 젖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손에 떨어지는 것은 빗방울이고, 비에 젖은 허공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시인의 말에 이제야 '허공'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허공'이란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요.


글을 읽는걸 잠시 멈추고, 코에 집중해보세요.

우리의 코는 끊임없이 숨결을 허공으로 내뱉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숨결을 평상시에는 인지하지 못하죠.

제가 이 말을 해서, 허공으로 내뿜어지는 숨결을 느끼셨을 겁니다.


이것이 낯설게 보기입니다.


오규원 시인의 시를 하나 더 볼까요?




오후와 아이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을 파며 걷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을 열며 걷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두 눈을 번쩍 뜨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우뚝 멈추어 서고 있다

한 아이가 공기의 속에서 문득 돌아서고 있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도 느껴지실 겁니다. 그 공기가 가볍나요 무겁나요?

시의 3번째 행을 읽고 나서는 눈이 껌벅일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도 느껴지실 거고요.

도대체 공기의 속을 파며 걷는 걸음걸이는 어떤 걸음걸이 일까요?

여러분의 걸음걸이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문학이 이렇게나 신기합니다.





하지만,  비도 문학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비도, 자칫 그냥 지나갈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해주죠.


비 오는 날 나무 기둥은 색이 더욱 짙어집니다. 검고 검은 색이 되죠. 촉촉하게 물에 젖어 약간은 윤기가 돕니다. 참새의 날개는 비에 젖으면 흔히 말하는 '떡지듯' 되어버립니다. 조금이나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날갯죽지를 푸드닥대면 작은 물방울이 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낯설게 보는 연습을 해봅시다.

안 하던 짓을 좀 하자고요,

구둣발로 길가의 물웅덩을 밟아봅시다.

구두와 물이 만나 경쾌한 소리를 내죠.

사람 없는 곳에서 어린날로 돌아가 우산을 돌려봅시다.

우산 살 사이로 튀는 물방울들을 지켜봅시다.

물에 젖은 나무 기둥에 손을 대어봅시다.

이상한 것들이 묻을 것 같지만 의외로 촉촉합니다.





일상문학에서 추구하는 바는, 일상을 감수성에 푹 적셔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아마  살기가 힘들 거예요. 마치 빨간 머리 앤 첫 부분에서 초록지붕 집에 오늘 길까지 끊임없이 떠들어 댔던 앤처럼, 그리고 마틸다가 그런 앤을 피곤해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겠죠.


하지만 카메라 렌즈 하나 장만하듯, 바꿔낄 수 있는 일상을 바라보는 눈을 하나 더 장착하자는 겁니다. 낯설게 보게끔 하는 카메라는 분명 우리가 놓쳤던 새로운 일상의 모습을 포착하게 해줄 겁니다.



일상문학 숙제


1. 낯설게 보기

2. 오규원 시인처럼 표현해보기



*달아주시는 댓글들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답글을 달지 않는 이유는 아직 제가 많이 미숙해서입니다.. 숙제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다가 추가하였는데요. '제 주제가 뭐라고 숙제를 내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읽고 나서 남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욕심이 들어 추가했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고 무언가 하나의 반짝임이라도 얻어가셨다면 저는 그걸로 족합니다. 일단 제 작은 목표는 한 달 동안 글을 잘 연재하는 것입니다. 글을 잘 연재하고 나면 그때는 이제 '나는 이만큼 꾸준히 무언가를 해 왔다'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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