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학 다섯 번째
That is part of the beauty of all literature. You discover that your longings are universal longings, that you're not lonely and isolated from anyone. You belong.”
― F. Scott Fitzgerald
그것이 모든 문학이 가진 아름다움 중 하나이다. 당신은 당신의 소망이 많은 사람들의 소망임을 알 수 있고, 당신이 외롭거나 누군가로부터 소외당한 것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은 '속해있다.'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알려진 미국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이 말이 오늘 일상문학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사람들>의 단편 중 하나인 「작은 구름 한 점(A little cloud)」을 같이 볼까 합니다. 더 정확히는 소설의 주인공인 Chandler를 만나볼까 해요.
Chandler,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죠?
저도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서 Chandler를 봤을 때 미드 프렌즈의 진지한 관계를 두려워하는 챈들러가 생각났습니다.
사람을 대하는데 서툴고 마음 속 어딘가가 위축되어있어 말을 하면 비꼬는 말만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지금 하는 일을 관두지 못하는 그런 챈들러 말이죠.
저는 그런 챈들러를 프렌즈의 여섯 명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은 구름 한점>에 나오는 챈들러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겠더라고요. 두 챈들러는 닮은 점이 많아요.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두 챈들러는 저와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 작가인 조이스 조차도 이 작품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동생 스태니스로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은 구름 한 조각의 한 페이지가 나의 모든 시들보다도 나에게 더 많은 기쁨을 준다'고 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챈들러는 어떤 사람이길래,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 조차도 사랑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그는 작은 챈들러라고 불렸는데, 그 이유인즉 그는 평균 신장보다 약간 작았을 뿐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집이 작다는 인상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손은 희고 작았으며 몸집은 연약했고,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몸가짐은 세련되어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단처럼 고운 머리칼과 코밑수염을 정성껏 가꾸었고 손수건에는 알뜰하게 향수를 뿌렸다. 손톱의 반달 모양은 흠잡을 데가 없었고, 그가 미소를 지을 때면 어린애같이 하얀 이가 나란히 얼핏 보였다.
챈들러는 작습니다. 실제로도 작았지만 그의 마음 역시 작아요. 아내의 블라우스를 사가지고 오면서 허둥지둥 대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성격은 매우 소심한 편입니다. 머리와 수염 향수를 뿌리는 모습에선 남성다움보다는 여성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고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결여된 챈들러의 모습은 친구 갤러허와 만날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런던, 파리 등지를 여행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거침없는 갤러허의 앞에서 챈들러는 수줍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갤러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동안이나마 갤러허의 황당하고 호탕스런 생활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 이러한 모험이 그의 세심한 성품의 균형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생활과 친구의 생활과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으며, 그것은 아무래도 그에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갤러허는 가문이나 교육에 있어서 자기보다 못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해 왔던 것보다 한층 더 훌륭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며 자신도 단지 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 값 싸고 번지르르한 저널리즘 이상으로 좀 더 고상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길을 방해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의 불행한 수줍음이었다!
챈들러는 법률 사무소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시인이 되고자 합니다. 본인에게 문학적인 능력이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한편으론 갤러허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갤러허에게 결혼했다는 걸 수줍지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해보지만 갤러허는 돈과 결혼하겠다며 챈들러의 말을 받아치죠.
더 이상 자랑할 것도 부러워할 것도 남지 않은 챈들러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집을 둘러보는데, 작고 예쁜 가구들로 이뤄진 그의 집은 마치 그가 ‘작은’ 챈들러인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작은 챈들러는 부끄러워 두 뺨이 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램프의 불빛에서 뒤로 물러섰다. 그는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이 점점 가라앉는 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자 후회의 눈물이 그의 눈에 괴기 시작했다
빽빽 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챈들러는 울었습니다. 여기서의 눈물은 단순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다그친 것에 대한 후회의 눈물일 수 있겠습니다만, 갤러허와의 만남, 거기서 오는 자괴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옳죠.
여기까지만 보자면 챈들러는 정말이지 찌질한 주인공입니다. 스스로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능력은 없었고, 친구에게 어떻게 좀 빌붙어보려고 만났다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명 예전에는 자신보다 못했던 친구인데 이렇게 출세한 걸 보니 부럽기도 하고, 그의 경박한 말투는 내 문학적 감수성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해봐도 허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죠. "문학이 밥먹여주냐? 감수성이 밥먹여주냐?"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시킨 심부름을 깜박했네요. 된통 혼나고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데,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일어나 울기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는 아이가 미워서 소리쳐보지만 울음소리는 줄긴커녕 점점 커질 뿐이고요. 결국 장보고 돌아온 아내에게 애를 울렸다고 야단을 맞고 살짝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찌질하지 않나요?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신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만 그걸 밀고 나갈 추진력은 없고. 친구에게 어떻게든 빌붙어보려하고. 그 와중에 하나라도 그 친구보다 나은 게 있다면 자랑하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은 옹졸하고 비굴해 보입니다. Little 그 자체랄까요.
하지만 이렇게 찌질하다고 비난하는 우리에게 챈들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도 이 단편을 사랑했다고 말했지만 저 또한 챈들러를 미워하거나 얕볼 수 없습니다.
우습게도 내가 바로 챈들러이기 때문이죠.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와중에도 나는 그나마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하고, 내가 그 친구보다 나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립니다. 아마 조이스도 챈들러의 모습 속에 스스로를 투영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문학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아하던 우리의 성격을 드러내 줍니다.
문학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동조하거나 비판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알아가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약간은 안심하게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네'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네'
사실은 어떻게 보면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던 스스로의 면모였는데도
문학을 통해 다시 보게 되고, 실체를 보았으니 인정하게 되고, 용서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됩니다.
1. 좋아하던, 싫어하던 책속의 주인공을 눈앞에 데려다 놔 봅시다.
2. 그 주인공과 대화해봅시다.
'너와 나는 무엇이 닮았니?' '나는 너의 이런 점이 싫었어' '너의 이런 점이 나를 힘들게 해'
3. 대화의 끝에 '왜?'라고 질문해봅시다.
인용 :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사람들·비평문』, 김종건 옮김, 범우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