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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Jun 15. 2022

'선생님'이라는 호칭, 그리고 나의 선생님들

모든 이들이 '선생님'인 세상을 꿈꾸며


1. 사범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학부생에게는 '-님' 호칭을 쓰고, 대학원생에게는 '- 선생님' 호칭을 쓴다. 물론 존대한다.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함께한 3년 간의 자원활동에서도 존대를 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있지만 존대어로 소통할 때 마음이 더 평온하다. 


2. 대학원에서의 '선생님' 호칭에 대해서 엇갈리는 의견들이 있고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범대학의 경우 특수성이 더해진다. 실제 대학원생 중 상당수가 현직 교사이기 때문이다. 


3. 이 상황에서 호칭을 정하는 일은 애매하다. 물론 학부와 같이 모두를 '-님'으로 부르는 방법이 있지만 호칭체계의 전통 혹은 아비투스 때문에 교사들을 '-님'으로 부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일하고 있는 과의 경우 원생들이 나를 '선생님/교수님'으로 부르는데 내가 그들을 '-님'으로 부른다면 호칭에서부터 위계를 형성하는 셈이다.


4.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레 현직 교사들을 'OOO 선생님'으로 부르게 된다. 그러고 나면 다른 대학원생들이 남는데 이들을 'OOO님'이라고 부르자니 현직 교사들과의 호칭에 차이가 생긴다. 이 시나리오에서도 미묘한 위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5. 이런 이유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알기로 많은 사범대학 대학원에서 오래 전부터 모두를 통칭하여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다. 물론 "선생님"과 "님"이 공존하는 호칭체계를 선택할 수도 있었겠으나 현재와 같은 체계로 굳어졌고 이젠 다수에게 자연스런 호칭이 되었다. (여전히 첫 학기에 '선생님' 호칭을 어색해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상한' 호칭체계를 나름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6. 아울러 원생들 중 다수가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상황에서 강사와 학생 사이에 호칭이 통일되는 효과도 있다. 난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서로가 서로를 '선생님'으로 부름으로써 적어도 호칭에서만큼은 위계를 형성하지 않으니 말이다. (종종 '교수님'을 쓰는 학생들도 있으나 호칭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는다.)


Photo by ThisisEngineering RAEng on Unsplash


(여기까지는 서론이었고 이제부터 본론이다.) 


7. 나는 전통과 습관이 만들어 낸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나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호칭이라고나 할까.


8. '선생'의 한자어 先生이다. 이는 '먼저 나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연령이라는 틀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나다'가 아닌 '살다'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선생'은 먼저 났다기 보다는 먼저 산 사람이다.


9. 이게 무슨 차이인가 싶으실 분도 있겠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먼저 났다는 것은 나이의 문제이지만 먼저 살았다는 것은 삶의 문제, 주체의 문제, 존재의 문제이다. 


10. '먼저 남'을 기준으로 이야기해 보자. 10여 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필자보다 먼저 난 사람을 가르친 경험은 손에 꼽는다. 그런 면에서 '먼저 난 사람'이라는 의미에 방점을 찍는다면 나는 학생들의 선생이지만 학생들은 나의 선생이 아니다. 


11. 하지만 '먼저 삶'의 의미로 본다면 모두가 나의 선생이다. 나는 김성우라는 존재로 평생을 살아왔고 상대는 홍길동이라는 존재로 평생을 살아왔다. 나는 홍길동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에 홍길동은 그 삶에 있어서 나의 선생이다. 홍길동이라는 주체가, 역사가, 존재가 살아왔던 바는 홍길동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12. 그런 의미에서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말씀은 "(나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두 명의 선생이 있는 셈이다" 정도로 바꿔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3. 이쯤 되면 '선생'이 '먼저 남'의 의미라기 보다는 '먼저 배워서 더 뛰어남'의 의미가 크지 않나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물론 그런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먼저 배워서 조금 더 알고 있다'는 게 그리 큰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14.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어설프고 좌충우돌하는 존재이다. 수업 전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황급히 쪽글을 쓰고 학생들의 과제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다. 


15. 여전히 나이브한 나는 모두가 모두의 선생이 되는 교실을, 나아가 세상을 바라는 것 같다. 


덧. 쓰고 보니 학부에서도 나를 부르는 호칭을 '님'으로 해달라고 해야 하는지 고민이 생긴다. 계속 생각해 봐야겠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호칭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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