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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Jun 13. 2022

반의어의 틈새들

반대말을 의심해야 할 이유에 관하여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멋져 보였던 영어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목록’을 정리해 주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단어가 나왔을 때 한국어 뜻을 쓴 뒤 아래에 반의어와 유의어를 빠르게 나열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유의어는 등호(=)로, 반의어는 양방향 화살표(<->)로 표현하는 것이 관례였죠. 중고교에서도 그렇지만 토플이나 GRE 혹은 SAT 등을 공부해 본 분들이라면 반의어라는 녀석때문에 골치가 많이 아픕니다. 반대말이 아닌 것 같은 단어들이 떡하니 정답이라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흔히 '반대'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완전히 다른',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말일까요? 반의어라고 생각되는 짝을 가지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분석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브레인스토밍입니다. ^^)


1. ancient(고대의)<-> modern(현대의)

고대와 현대는 반대인가요? 고대에 있던 것 중에서 현대에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없나요? 예를 들어 ‘현대적인’ 패션 중에서 ‘고대풍’의 것은 현대적인 것인가요, 고대적인 것인가요?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두 가지가 우리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인간의 뇌는 현대적인가요, 고대적인가요? 아니면 짬뽕인가요? 고대와 현대가 단순히 시간적인 개념이라면 지금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현대적인 것은 아닐까요? ‘고대’나 ‘현대’가 시간이 아닌 추상적 개념이 될 수는 없나요? 그런 개념들은 현실과 물질, 언어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나요? 


2. bitter(쓴) <->  sweet(달콤한)

‘쓰다’의 반대가 ‘달콤하다’라는 약속은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언어의 세계에서 우리가 명백하다고 생각하는 반의성을 과학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요? 혹 틀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쓰고, 달고는 맛이 있는 거니까 이 단어들은 한 무리로 묶여야 하고, ‘밍밍한’이나 ‘아무 맛도 없는’이 반대말은 아닐까요? 쓰다와 달다는 서로 반대말이 있는데 매운 맛의 반대는 뭘까요? bittersweet 라는 말은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데, sweetbitter는 왜 대부분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이유가 있을까요? 


3. mental(정신적인) <->  physical(육체적인)

정신적인 것의 반대가 육체적인 것이라면, 정신과 육체는 어떤 관계일까요? 이 반의어의 짝에 모든 사람이 동의할까요? 철학과 심리학, 의학과 인지과학은 이 둘을 반의어로 인식할까요? 어떤 영역에서 둘이 구분되고 어떤 영역에서 구분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일상에서 정신과 육체는 어떻게 분리되고 어떻게 통합되나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로 마음이 아프면 정신적인 아픔인가요, 육체적인 아픔인가요? 거기에 어떤 경계가 있나요?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에서의 경험은 육체적인가요, 정신적인가요? 


4. forgive(용서하다) <-> punish(벌하다)

이 반의어는 동일한세계에 위치하나요? 용서하는 행위의 반대가 벌을 주는 것이라면, 용서하지 않는 대상을 벌할 수 있나요? ‘용서’는 어떤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형벌’은 어떤 차원에서 이루어지나요? 예를 들어 518 학살의 주범에 대해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을 벌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용서 대신 벌을 택할 수 있는 사건이 얼마나 될까요? 두 단어의 주체는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 주체들 간의 권력은 이 두 행위를 어떻게 나누나요? 누군가는 용서를 강요받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벌을 주려 하지 않나요? 


5. to create <->  to destroy

만드는 것이 파괴하는 것과 반대라면, 악기를 부수어 어떤 표상을, 의미를, 정동을 창조하는 행위예술가는 만들고 있나요, 파괴하고 있나요? 우리가 은어와 속어를 사용하거나 기존에 없었던 철자로 된 단어를 쓸 때, A언어도 아니고 B언어도 아닌 그 사이의 ‘짬뽕’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언어를 창조하고 있나요, 파괴하고 있나요? "창조를 위한 파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파괴를 위한 창조"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일까요? “create <->  destroy”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지만 “create+destroy”로 인식해야만 가능한 일도 있지 않나요? 


Photo by Greg Jeanneau � on Unsplash


몇 가지 논의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반의어는 특정한 프레임 속에서 정의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반의어는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있어서 반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호주관적으로 인식되는 반대”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반의어를 만드는 것은 공동체의 관습과 권력관계인 것이죠. 일정한 사회문화적 틀(frame)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단어 간의 관계를 정립함에 있어 사회문화적, 인지적 틀이 갖는 중요성은 다음 예시에서도 나타납니다. 


estimate: calculate


이 두 단어는 반대말일까요, 아니면 비슷한 말일까요? 누군가는 이것을 '유의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양을 가늠한다는 큰 틀에서는 이 두 가지는 비슷한 말이죠. 하지만 다음 예에서는 어떨까요?


A: According to my estimation(나의 추정에 따르면),

B: What do you mean by "estimation"? We have all the numbers here. Haven't you calculated this yet(‘추정’이라니 무슨 말이야? 여기 숫자들이 다 나와 있는데. 이거 아직 계산 안 해봤어)?


이 경우 estimation 은 '추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머리속으로 대충 계산을 돌려본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답을 얻는 계산과는 완전히 반대의 의미가 되는 것이죠. 


반대말과 지식체계


개별 단어의 체계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도 이런 현상은 수없이 발견됩니다.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반대말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인식되곤 하죠. 하지만 이는 사회역사적으로 절대적인 반대라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교육 하에서 만들어진 개념체계일 겁니다. 만약 자본주의의 반대가 인본주의라고 말한다면 어떤가요?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사회체제, 그것이 지금의 시스템과 반대라고 말한다면 어떤가요? 자본주의의 반대가 생태주의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인간이 만들어 낸 재화, 금융, 서비스, 무역 등의 시스템이 이 세계의 기본구조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과 자연, 그 일부로서의 인간이 세계가 돌아가는 근본 구조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본성 대 양육 논쟁 (Nature vs. Nurture debate) 은 인간을 다루는 학문 분야 전체에서 핵심이 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종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성장하고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또 변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흥미롭고도 심각한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이 대립 구도가 정말 '대립적'인 것일까요? ‘본성’과 ‘양육’ 사이의 ‘vs’는 진정 건널 수 없는 골짜기를 의미하나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반의어를 나열하는 선생님에서 그치고 싶지 않습니다. 반의어를 가르치고 나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틈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런 인식을 가능케 하는 사회문화적인 힘에 대해서, 프레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생각하는 외국어공부, 비판하고 성찰하고 창조하는 외국어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덧. 개인적으로는 90년대 후반의 부자아빠:가난한 아빠 구도가 가장 가증스런 반의어 쌍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 전부가 그런 건 아닐지라도 제목만으로 충분히 해로운 반의어 틀을 만들어 내었지요. 


#삶을위한리터러시 #인지언어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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