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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Aug 04. 2022

'PC'라는 개념의 앙상함에 대하여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

PC(Political correctness) 개념의 근본적 문제는 이게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불린다는 것 아닐까? 언행을 정치적 영역에 묶어두려는 호명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것 아닐까? 다면적 스펙트럼 상의 발화를 '옳은가/옳지 않은가' 혹은 '맞는가/틀린가', 더 심하게는 발화자가 'PC충인가/자유 발화의 옹호자인가'의 이분법으로 납작하게 만드는 일 자체가 더 나은 삶과 예술, 정치를 위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 아닌가? 


결국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empathy), 언어의 작동방식에 대한 개념적 지식, 사회언어학적 적절성(sociolinguistic appropriateness), 자기성찰성(self-reflexivity), 약자에 대한 감수성, 다양성에 대한 인식,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적 이해, 관계와 맥락에 대한 고려 등의 조합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토론될 수 있는 영역을 '정치'와 '올바름'이라는 두 축으로 축소하여 정의하는 데서 온갖 문제가 생겨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정치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 사회문화적 현상에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정치적 올바름'은 정치만의 문제도, 올바르냐 아니냐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맥락에 대한 민감성의 문제이자 스스로의 말의 힘에 대한 성찰성의 문제다.


발화자와 청자, 맥락과 관계, 권력과 저항의 문제를 괄호치고 그저 '저 (un)PC한 것들'로 통칭하는 일은 "대한민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야"라고 선언하는 것만큼이나 해롭다. 디테일이 빠진 앙상한 개념으로 온갖 사례를 묶거나 'PC충'을 감별하는 일이야말로 토론과 합의를 막는 일 아닌가. 


Photo by charlesdeluvio on Unsplash


최근 읽었던 한 논문은 "strong reader"나 "reading muscle"과 같은 표현이 에이블리즘(ableism, 비장애인 중심주의, 장애인 차별)과 연결될 수 있음을 깊이 성찰한다. 'strong'이나 'muscle'과 같이 일견 중립적이고 무해하며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단어도 특정한 맥락과 관계 속에서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정체성을 공유하며 유대를 강화하는 비속어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타자가 N-word를 흑인에게 사용하는 일과, 수십 년 절친으로 지내 온 흑인들이 서로에게 N-word를 사용하는 것은 절대 같을 수 없다. 타인이 여성을 비속어로 표현하는 일과 여성들이 직접 기존의 차별적인 언표를 뒤집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저항과 반격의 언표로 삼는 일은 완전히 다른 행위다. 기표는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지 못 한다. 발음과 철자는 단어가 품는 의미의 빙산의 일각만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단어가 갖는 의미와 무게는 맥락과 관계, 권력과 제도에 대한 고찰 없이 확정될 수 없는 것이다. 


다양한 권력관계와 맥락이 중첩되는 가운데 사용되는 언어의 문제를 PC함/unPC함으로 양분하는 일은 사라지면 좋겠다. 우리는 그보다 더 섬세하고 지혜로울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신이 지정한 정의에 따라 단호하고도 가감없이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벼리는 이들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를 어떤 세계를 위해 쓸 것인지 순간순간 고민하며 떨림과 긴장의 마음을 간직하는 이들이 귀한 시절이다.


#삶을위한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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