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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Aug 26. 2022

10년 글쓰기 프로젝트를 마감한 날

'인지언어학 이야기(가제)' 탈고 잡감


10년을 천착해 온 일을 매듭지은 날입니다. 짧은 단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언제 끝날지 모를 여정이었습니다. 지금도 끝은 아닙니다. 완성은 없고 완료만 있을 뿐이겠지요. 그래도 작은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것으로 오늘 저녁은 뿌듯함을 느끼고 싶습니다. 


2. 전국영어교사모임에 9년 간 실었던 컬럼을 모으고, 재배열하고, 새로운 원고를 더했습니다. 실제로 다시 쓴 분량이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의식과 주제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완전히 다른 책이 되었습니다. 


3. 학술적인 작업을 바탕으로 인문교양서를 쓰는 일은 일종의 번역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단단한 영어공부>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도 계속 그 생각을 했고요. 처음 낸 책의 표지에 '나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철학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넣었는데, 여전히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시도해 보렵니다. 본질을 지우지 않으면서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4. 편집자 선생님과 핑퐁게임을 열심히 했습니다. 상대를 잘 공격해서 점수를 따야 이기는 핑퐁이 아니라, 상대방이 치기 좋게, 때로는 조금 날카롭게, 때로는 흥미로운 구질로 공을 주거니받거니하는 핑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기고 지고에 관계 없이 즐거웠고, 다 치고 나니 둘 다 실력이 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책이 선물처럼 왔습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저를 멋지고 훌륭하게, 끈질긴 정성과 노동으로 이끌어 주신 편집자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5. 이 정도 분량의 원고는 처음이었습니다. 마감이 힘들지 않은 책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300쪽이 안 되는 원고를 마감하는 것과 600쪽이 좀 안 되는 원고를 마감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방학이 순삭이었습니다. 아, 이제 개학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습니다.


6. 무엇보다 저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어떻게 해야 좀 더 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배울 수 있었고, 다음에는 이번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7. 다 놓고 싶은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잡아주는 이들이 있어 버텼습니다. 클리셰로 들리는 이 문장들이 제겐 진실입니다. 지금도 흥얼거리는 "세월 가면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라는 구절이 날이 갈수록 절절합니다. 하늘에, 불광천에, 오리와 고양이들에, 먼저 연구한 선생님들께, 함께 원고를 보아준 동료들에게, 책이 이리저리 널려 있는 이 공간에, 소셜미디어의 친구들에게, 먼저 먼 길을 떠난 그리운 이들에게, 샌드위치 가게 사장님께,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함께했던 학생들에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참 많이 기대었습니다.  


사랑의 빚은 늘어가고 갚을 길은 요원해집니다.


덧. 책은 9월 둘째 주 경에 나온다고 합니다. 나오면 소식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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