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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Sep 01. 2022

사적 언어 그리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국어'

혼잣말과 인지발달의 관계에 대하여



1. 비고츠키와 그의 동료들이 관심을 가졌던 주제 중에 '사적 언어(private speech)'가 있습니다. 사적 언어는 타인을 향한 발화 즉 사회적 언어(social speech)와 대치되는 개념입니다. 제1언어 발달 초기에 아동이 혼잣말을 하는 경우, 예를 들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중얼거리거나 순서가 있는 복잡한 과업을 해결하면서 자기 혼자 설명을 곁들이는 경우, 무언가 행동을 하면서 반복해서 중얼대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2. 성인도 사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자신을 향해 연신 중얼대는 아이들의 혼잣말이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줄기차게 한다는 건 비효율적이고 '본질을 거스르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어의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기능이 과연 소통(commnication)일까요? 언어학과 진화심리학 내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차분하게 정리를 해 보고자 합니다.)


3. 그래서 피아제와 같은 발달심리학자는 사적 언어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언어로 봅니다. 사적 언어의 사용을 (1) 사회적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못한 상태를 보여주는 징후이자, (2) 인지적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튀어나오는 '알 수 없는 언어 사용'으로 본 것입니다. 아동의 내면에 갇혀 아직 밖으로 터져나오지 못한 언어인 것이죠. 시쳇말로 '아직 말을 제대로 할 능력이 되지 않는 상태'라는 진단입니다.


4. 비고츠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적 언어는 아동이 사회적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를 조금씩 받아들여 인지발달을 돕는 도구로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었죠. 그가 제시한 개념을 사용해서 이야기하자면, 사적 언어는 사회적 언어의 내면화(internalization) 과정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아동의 인지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입니다. 비유하자면 사적언어는 세상의 다양한 상호작용, 그 중에서도 언어를 기반으로 한 소통을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적 언어의 활발한 사용은 '발달의 최전선'인 셈입니다. 사적 언어의 분석을 통해 외부의 언어가 경계의 언어로, 이것이 내부의 언어로, 결국 생각의 도구이자 생각 자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면밀히 파악할 있는 것이지요.  



레프 비고츠키 (출처: 위키피디아, Fair Use)



5. 이상에서 피아제와 비고츠키는 아동의 인지-언어발달을 사뭇 다르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가 내면의 인지발달이 우선 진행되고 나서야 사회적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 반면, 후자는 사회적 언어가 발달의 근원(source)이 되어 개인의 내면을 형성해 나가며 이것이 인지발달과 변증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던 것이지요. 발달의 기전을 그리는 화살표를 그리면 반대 방향이 될 겁니다. (물론 적지 않은 교재나 유튜브 영상들이 말하는 '완전 반대'와 같은 설명은 이 두 학자의 관점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6. 아이가 어떤 과업을 수행하면서 자신에게 말을 하는 건 실제로 자신의 행동을, 그를 이루는 인지-정서 과정을 제어(regulation)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이미 머리 속에서 100% 완성된 생각이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말을 변환하고 또 자신의 말을 들으며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생각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것입니다. 언어와 사고는 이렇게 서로 맞물리면서 과업 수행(행동)에 도움을 줍니다.실제로 조금 복잡한 과업을 아이들에게 주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면 과업 수행에 심각한 영향을 받습니다. 이에 비해 조금 복잡한 과업이라도 스스로에게 차근차근 말을 해가면서 풀어가면 비교적 쉽게 해결이 되기도 하죠. 말을 못하게 하면, 말만 못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과정 자체가 심각한 방해를 받는 것입니다.


7. 언어와 생각이 짝을 이루어 '함께 춤추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말과 사고는 변증적으로 통합되어 갑니다. 언어는 단지 완성된 사고의 표현(expression)이 아니라, 사고를 구성하고 완성하는 도구, 비고츠키의 용어로 보면 중재(mediation)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언어가 내면의 언어로 변환되는 길목에 사적 언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사적언어는 이렇게 아동기의 사고발달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만, 성인의 발화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ft. 느닷없이 생각나는 <로마 위드 러브>의 무대 위 샤워 씬. 사적 언어는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물리적 배치, 특정한 모드(여기에서는 노래), 특정한 몸의 움직임을 동반합니다!)


8.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다가 어떤 슬라이드를 보고 당황하더니, "어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니야..."라고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더군요. 프리젠테이션의 말투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말투였습니다. 줄곧 존대말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반말로 전환한 상황이었죠. 저는 맨 앞줄에서 듣고 있다가 웃을 뻔했습니다. 실수야 할 수 있는 것이고 프리젠테이션의 흐름에서 그리 중요한 대목도 아니었거지만, 학생의 말투로 보아 해당 발화는 '자기도 모르게 교실 전체에 중계되고' 있었으니까요. :) 


9. 이 경우 해당 발화는 경계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이거 아닌데, 이거 아니야"라는 말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말이 튀어나온 것이고요. 수업 후 설명을 들으니 자기가 생각했던 슬라이드 한 장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더군요. 


10. 즉, "이거 아닌데"는 (본의 아니게)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해당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과 프리젠테이션 수행을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한 인지-정서적 기능 또한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장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다가 반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위의 상황과 결이 비슷하지요. 


Photo by Dan Meyers on Unsplash


11. 이와 관련해서 저 자신도 사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화 도중에 틀린 말을 하면 '아 아니다'라고 말하며 정보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인데, 상대방을 향한 말이라기 보다는 저 자신의 인지적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12. 인간은 예외 없이 사적 언어를 사용하며 성장하고, 이를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있죠. 그래서 연배가 한참 높은 분과 이야기하던 제가 "아, 아니다. 2017년이 아니라 2018년이었네요"라며 '반말'을 섞어 쓴다고 해서 상대가 얼굴을 붉히진 않습니다. "자네, 무례하구만. 어디서 반말을... '아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되받아치는 분은 없는 것이죠.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엄청 짜증이 날 듯하네요. ㅎㅎㅎ)


13. 사적 언어가 사고를 제어하는 인지적 기능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바이링궐의 언어 사용에서도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업무를 위해 100%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당황했을 때 한국말이 튀어나올 수 있고, 균형잡힌 한영 바이링궐이라고 해도 아동기에 주로 한국어를 쓰고 자란 경우 감탄사가 한국어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100% 영어를 쓰더라도 자신을 향한 말은 아동기 인지발달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이죠. 


14. 예전에 한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분명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교육까지 마친 친구가 미국에 온 지 몇 해 지나지 않았는데 말끝마다 "Ouch"를 연발하더랍니다. 한국인 친구들이랑 만나도 영어 사용을 멈추지 않았구요. 단시간에 영어를 늘려야 된다는 일념 하에 고집을 피운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재수없는" 아이로 찍혔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궁금했습니다. '이 녀석, 엄청 놀라는 상황에서도 'Ouch'를 내뱉을까? 아닐 꺼 같은데?' 그래서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캄캄한 밤 모퉁이를 돌아서는 'Ouch 친구'의 혼이 빠져나갈 만큼 놀래키는 거였죠. 


Ouch 친구: (저벅 저벅 저벅)

친구들: ('온다 온다 온다 준비!')

Ouch 친구: (모퉁이에 근접한다)

친구들: (모퉁이에서 튀어나오면서) "아아아아악ㄱㄱㄱ"

Ouch 친구: 아... 아 깜짝이야!!! 

친구들: "'아 깜짝이야'래. '아 깜짝이야.' ㅎㅎㅎ"

그림이 그려지시죠? :)


(친구의 언어사용이 못마땅하다고 밤에 저렇게 놀래키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암튼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


15. 수학 문제 풀 때 스스로에게 말하는 분 안계신가요? 어렸을 때 저를 기억해 보면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저도 모르게 조금씩 혼잣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옆에 사람이 없으면 소리를 내기도 했고요. 이 경우 머리 속에서 완성된 생각을 밖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해 사고를 확인, 촉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통해 변화된 생각은 문제 해결에 영향을 주고, 또 다른 '혼잣말'을 낳게 되죠. 이렇게 사고와 언어는 서로를 끌어주고 변화시키며 좀 더 복잡한 수준의 문제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16. 나이가 들어 명시적인 혼잣말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능이 다른 여러 모드로 통합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는 사적언어, 혼잣말의 끝없는 향연입니다. 말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말과 생각이 섞이고, 생각과 말이 충돌하고... 그런 가운데 어떤 길을 내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 예전에 끄적였던 쪽글을 인용해 봅니다. 


"<ex-pression과 in-pression의 순환으로서의 글쓰기>


글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한다면 글을 단지 표현(ex-pression; 밖으로 밀어내기)으로 생각하는 것의 한계는 명확합니다. 글쓰기가 그저 생각이 두뇌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글이 되는 순간 우리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글은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글이 사고과정에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저는 'in-p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외부에서 내면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이 두 과정 즉 ex-pression과 in-pression이 끊임없이 교섭하는 과정입니다. 끄집어 내는 일임과 동시에 끄집어 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일. 이 두 과정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돌아가는 것입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게 아닙니다. 단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만도 아닙니다. 생각을 내어놓고, 검토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손끝에서 나오는 텍스트와 머리 속 사고과정이 끊임없이 교섭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보이지 않는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텍스트가 되고 이것이 다시 사고의 재료가 되는 과정, 그 전부가 쓰기입니다. 이런 면에서 쓰기는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는 것을 엮어내는 신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16. 그러고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혼잣말이야말로 인간의 사고 발달의 핵심적 기제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혼잣말을 하시나요? 


#사회문화이론 #혼잣말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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