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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Sep 15. 2022

과거형 '-ed'와 이별의 심연

문법을 인생과 엮어 가르치는 방법에 관하여 

오늘 영어 어휘와 문법 교수법 시간에 했던 이야기입니다. 


1. "동사원형에 -ed를 붙이면 과거죠." vs. "'I love you.'와 'I loved you.'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로 시작하는 수업의 차이.


2. 어느 가상 수업 시간 


"뭔가를 사랑했다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적이 있나요?"

"(당황/웃음/웅성) 네."

"그럼 그 무엇인가를 you라고 의인화해서 표현해 볼게요."

"네."

"그럼 지금은 그걸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네."

"그럼 'I loved you'라고 쓸 수 있겠네요?"

"네네."

"자 그럼 여기 이렇게 두 문장을 써 볼게요."


[칠판에 그림]

현재 (I loved you.) 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거 (I love you.)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I loved you'라고 말하지만 과거에는 'I love you'라고 말했던 것. 이제 여러분의 차례에요. 저 긴 밑줄 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써 봐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써도 좋고, 한국어 문장을 위쪽에, 번역기를 돌려 나온 문장을 아래쪽에 써도 좋아요. 문장으로 표현하기 보다 그림을 선택하고 싶다면 그림을 그려 넣어도 좋아요. 온라인 밈 생성기로 밈을 넣어봐도 좋고요. 


와우, 길동이는 요즘 미드저니에 빠져 있다고요? 그럼 미드저니에 어떤 명령어를 넣었는지 쓰고 결과물을 붙여 넣어도 좋겠네요. 지난 번 동아리 대항전에서 우승한 댄스팀이 이 반에 있지 않았나요? 그럼 모여서 간단한 춤 동작을 만들어서 촬영해도 좋아요. 기록으로 남겨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자 오늘은 loved와 love 사이를 여러분 마음대로 채워볼 거예요. 그리고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이렇게 수업을 진행한 뒤, 학생들과 나즈막이 다음 문장을 낭독해 보죠.


"I love you. No, no. I loved you."


"-ed"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지 않나요? 


추석 연휴에 바라본 하늘, 울컥 기억이 쏟아졌다.


3. 'love-loved'에는 언어의 질서만이 있어요. 이걸 외우는 건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거기에서 멈춘다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love의 과거형이 loved라는 건 사전을 찾으면 나와요. 알고리듬으로 생성 가능하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어 내에서, 논리적 변이형을 넘어서 '과거형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기계번역의 시대,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올바른 과거형과 과거완료형을 넘어 그것이 담지하는 세계와 경험, 감정과 지식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십 수백개씩 영한 번역을 짝지어 외우는 것이 유일한 단어 공부라면 우리는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4. "삶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어떠해야 할까요. 여러 가지 모양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어를 인생과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love의 과거형은 loved’라고 가르치기보다는 ‘I love you’와 ‘I loved you’ 사이의 심연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과 지나간 사랑을 반추하는 일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시제의 변화와 함께 달라져 버린 I와 you를, I와 you가 나누었던 love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단단한 영어공부, 247쪽) 


#인지언어학이야기 #단단한영어공부 #영어의마음을읽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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