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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Sep 22. 2022

읽기 '폭탄' 단상

대학원에서의 읽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가?


제가 공부하고 가르치는 분야인 응용언어학, 사회언어학, 언어교육의 경우를 염두에 둔 글입니다.


대학원에서 엄청난 양의 읽기자료를 부과하는 일에 문제의식이 있다. 예를 들어 질적연구의 대표방법론인 문화기술지를 이해하기는 커녕 '문화기술지'라는 용어를 어렴풋이 들어본 게 전부인 석사1년차 학생이 있다. 첫 학기 과감하게 질적연구방법론을 신청하여 교재에 나와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한 주에 하나씩 '클리어'한다. 


이 경우 설사 그가 방대한 읽기자료를 어지저찌 읽어간다고 해도 학기 말에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공산이 크다. 이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유구한 질적연구의 전통 vs. 연구 입문자'라는 구도에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다. 밤새고 공부한다고 한 학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고문헌만 수 페이지에 이르는 소위 '장난 아닌 실러버스'가 가지는 권위와 아우라를 의심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그렇게 '빡세게' 공부한 경험이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식의 합리화에 어느 정도 공모했다면 이제는 '단 한 가지 방법론이라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작은 프로젝트를 실제로 실행하면서 질적연구가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다른 방법론에 접근하는 것이 더 낫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지식의 함양도 중요하지만 연구자+저자로서의 정체성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전자가 담론 세계의 광대함을 깨닫게 한다면 후자는 내가 그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새로운 여정을 떠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은 그가 계속 연구와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 또한 문제다. 적어도 나와 함께 공부하는 석사과정생들의 경우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또 다수는 교육현장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결국 이들은 석사과정에서 연구를 디자인하고 실행하여 글쓰기까지 완성하는 경험을 하지 못 하면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공산이 크다. 


물론 일부, 아니 '대세'는 석사과정에서의 연구와 논문쓰기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논문쓰기의 경험을 사회 나가서 어디에 써먹겠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석사 졸업요건에서 논문을 빼려는 흐름도 거세다. 이런 세상에서 학부 수업에서마저 주마다 적지 않은 양의 쪽글을 요구하는 내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빠져 살던 분들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책을 탐독하지도 않았고 습작을 실천하지도 못했다. 지극히 평범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편지쓰기였다. 중고교 시절 한 주에 한 두 통의 편지를 쓴 것 같다. 뻔한 레퍼토리가 반복되었고 할 말이 고갈되는 경험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나는 쓰는 일이 즐거웠고 펜팔 친구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좋았고 짝사랑하던 누나에게 잘 보이려고 글씨를 열심히 연습하던 내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의 삶 구석에 엉거주춤하지만 다정하게 스며들었다. (문득 '홀OO기'의 구절을 인용하여 편지를 쓰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의 미스테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그건 십대의 나와 같은 중고생들이, 또 성인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말))


오래 전 일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유용하게 생각했던 기능이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회의자료를 만들 때도, PPT 슬라이드를 작성할 때도, 경영진에게 이메일을 쓸 때도, 요약정리본을 만들 때도, 팀원들에게 회식 관련 의견을 물을 때도, 부서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낼 때도, 연구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장기휴가를 요청할 때도, 갈등을 빚는 사람들을 수신인으로 넣어 중재 이메일을 쓸 때도, 제안서를 작성할 때도, 인원충원의 필요성을 어필할 때도 유용했다. 직장생활 후반부 5년간 한 일은 IT 프로젝트 매니저였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문과형' PM이었던 셈이다. 상세 예산 기획과 간트차트 작성, 소프트웨어를 통한 리소스 관리, 시간/일단위 일정체크 등의 일을 했지만 나의 일의 중심은 언제나 글쓰기였다. 


논문이 매우 특수한 장르이긴 하지만 논문의 작성은 다양한 종류의 쓰기와 읽기, 사유와 대화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리터러시 역량이, 대화와 소통의 경험이 성장하지 못 한다면 그것은 논문쓰기 생태계가 어그러져 있음을 방증한다. 만약 대학원을 나온 사람들이, 논문을 쓴 사람들이 '쓸 데 없는 일을 한 것이다'라고 스스로 평가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판단된다면 그것은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대학원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양비론은 아니라고 믿는다. 


(할 일이 생겨서 여기까지. 언젠가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삶을위한리터러시 #저자로서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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