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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Sep 26. 2022

"논쟁을 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논쟁에서 승리하기, 혹은 훌쩍 넘어서기

1. 제 주변의 여러 분들이 요즘 공론장 및 교실 담화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하는 경향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은 객관적이고 팩트에 근거해 있으며 과학적임에 반해, 상대의 의견은 주관적이고 증거가 부실하며 팩트와 거리가 멀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지요. 


2. 자극적인 헤드라인, 전가의 보도가 되어버린 '공정'과 '팩트', '관심의 경제'가 작동하는 소셜미디어에서 대화의 상대보다는 '관중의 판단'에 집중하는 논의 방식 등이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특정 세대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바라보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약 '논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특정 세대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3. 제가 주목하는 것은 위 문장이 드러내는 은유, 또 그것으로 매개되는 인지구조입니다. 해당 문장은 "논쟁을 하면"으로 시작됩니다. 즉, 특정 주제에 대해 다소 상반되는 의견을 나누는 일을 "논쟁"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4. 다음 국어사전은 '논쟁'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논쟁 [論爭]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말이나 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툼


이를 하나씩 살펴 봅시다. 


(1) 우선 논쟁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즉 같거나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은 논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논쟁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논쟁이라는 개념 내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참여'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2) 다음으로 논쟁은 "말이나 글로" 매개됩니다. 논쟁은 언어코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는 '논(論)'이라는 한자의 의미에서 연유하지요. 예술적으로 각자의 의견을 표현하거나, 장기간의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각자의 의견을 발전시켜 보는 일은 논쟁이 아닙니다. 말글이라는 주류의 소통방식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 했거나, 다양한 이유에서 언어자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논쟁에 참여할 수 없음을 함의하기도 합니다. 


(3) 또한 논쟁은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가정 위에 기초하고 있는데, 논쟁에 참여하는 주체들 중 누군가의 말은 맞는 반면 다른 이의 말은 그르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옳으면 네가 그르고, 네가 옳으면 내가 그른 것이지요. 그렇기에 논쟁은 '누가 덜 그른지'를 가려내는 작업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옳은 측면을 최대한 통합하려는 시도도 아닙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열망은 논쟁에 내장되어 있으며, 이는 상대가 틀렸음을 증명하려는 욕망과 동전의 앞뒷면을 이룹니다. 


(4) 마지막으로 논쟁은 '다툼'입니다. '전쟁'에도 쓰이는 한자 '쟁(爭)'은  '다툴 쟁'입니다. 이런 면에서 논쟁이 다툼이라는 정의는 동어반복적 성격이 있습니다. 한자어에 대한 많은 정의가 이런 의미구조를 갖고 있지요. 그래서 논쟁은 종종 싸움을 나타내는 비주얼로 표현됩니다. 


Photo by Frank Busch on Unsplash


5. 위에서 살펴본 정의와 이에 깔려 있는 가정을 고려할 때, "논쟁을 하면 이기려 한다"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논쟁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말글 다툼이고, 옳음과 그름을 분별하는 과정에 기초해 있으며, 누군가는 옳아야 하고 누군가는 틀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논쟁에 뛰어드는 주체가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 애쓰는 것은 부정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행위 혹은 태도가 아닙니다. '논쟁'이라는 개념틀 안에서 지극히 당연하며 논리적인 선택이지요. 논쟁에서 무조건 이기려 하는 이들은 자연스러운 심리적, 문화적 패턴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는 문제제기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논쟁에서 무조건 이기려는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공론장에서의 수많은 대화를 '논쟁'으로 프레임하고, 이것을 '옳고 그름을 두고 다툼'으로 정의하는 일에서 탈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옳고 그름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회의 많은 이슈들은 첨예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때 무엇이 더 옳고 윤리적인 선택인가를 가려내는 일은 필수입니다. 싸움의 영역은 도처에 있고 이것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7. 하지만 교실에서, 지인과의 대화에서, 소셜미디어의 댓글 타래에서 일어나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논쟁'으로 개념화하는 일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해악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다른 의견들의 공존과 갈등, 교섭과 변형 속에서 유지될 수 있는 제도이며 문화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논쟁' 프레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창조적 프레임으로 재개념화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8. 사회언어학자 데보라 태넌은 1999년 그의 저서 <The Argument Culture: Stopping America's War of Words>를 통해 일찍이 적대적 논쟁 문화의 해악을 상세히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태넌의 사회언어학적 작업이 흔히 말하는 '리버럴 다문화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 드러나는 적대적 논쟁 문화와 담론적 증거를 살펴보는 일은 여전히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9. 인지언어학의 개념적 은유 이론은 이에 대하여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에서 저는 새로운 은유의 가능성에 대해 짧은 문단을 더한 바 있습니다.


"학술적이고 정치적인 대립이 전쟁으로 그려지는 것은 한국어나 영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논쟁이 꼭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전쟁이어야 하는 걸까요? 상상력을 발휘해서 춤추기에 비유한다면 어떤 표현이 가능하게 될까요? “그들의 논쟁은 스텝이 잘 맞지 않았다”라거나 “이번 논쟁은 유난히 박자가 잘 맞아떨어졌다”라는 표현이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논쟁을 중창이나 합창에 비유한다면 “두 정치인 간에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도 많았다”와 같은 표현도 가능하겠지요. 이런 상상력은 기존의 관점을 넘어 새로운 관점에서 논쟁을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49)


10. 이제 '논쟁은 전쟁'이라는 은유를 넘어서는 다양하고 참신한 사고와 실천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제도적 조건으로 인해 말글을 소통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지만, 그 힘을 약화시키면서 대안적 소통의 장을 만들어내는 과감한 탈주가 요구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의 역할이 핵심적이겠지요. 전통적으로 '높은' 가치와 권력이 부여되는 말글의 리터러시에 포섭되지 않는 다양한 '몸의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생산하며 공유하는 프로젝트 또한 절실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이러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한 발 더 나아가는 실천과 연대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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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논쟁을 하면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것 같아요" 보다는 "소통을 할 때마다 더 깊이 배우려고 해요"로, 나아가 "대화를 할 때마다 함께 성찰하고 나누고 성장하려고 애써요"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업과 소통을 꿈꿉니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논쟁 속에서 정말 필요한 전투가 얼마나 되는지 사려 깊게 판단할 수 있는 저였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싸움을 더 잘 싸우려고 노력하면서도, 많은 '논쟁'이 사실은 함께 대화하고 춤추고 합창하는 일일 수 있음을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후자를 통해 더 깊고 넓은 배움이 이루어질 때 전자에서 말하는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지언어학이야기 #영어의마음을읽는법 #논쟁을넘어서 #어휘와문법지도법 #수업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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