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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Oct 22. 2022

언어교수사의 '별종'

침묵 방법론과 커뮤니티 언어학습을 중심으로

1. 언어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교사와 연구자를 비롯한 영어교육 전문가에게 물으면 빠짐없이 언급하는 것이 '의사소통능력'이다. 여러 관점에서 답이 나오지만 핵심어는 단연 '의사소통역량(communictive competence)'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소통역량'이라는 말도 연원을 따라가면 구조주의 및 촘스키 언어학에 대한 사회언어학과 인류학의 반발에 닿게 되지만 토요일 아침에 굳이 그 이야기까지 하고 싶진 않고 기운도 없다. (<- 지독히 나쁜 논지 전개의 좋은(?) 예. 찔려서 번호는 안 붙임.)


2. 교수법의 역사에서 이러한 관점과 완전히 대비되는 '별종' 몇이 나타난 시기는 1960-70년대. 소위 '침묵 방법론(The Silent Way)'이라고 불리는 교수법은 그 중 하나였다. (유튜브를 검색하여 교실 수업 현장을 보면 필자가 왜 '별종'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론에서 언어교수학습의 제 1 목표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자기표현이다. 의사소통은 자기표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언어교육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침묵 방법론의 창시자인 Caleb Gattegno


3. 다시 말해 침묵 방법론의 관점에서 외국어는 다양한 자기표현 모드 중 하나이다. 누군가는 한국어로, 누군가는 베트남어로, 누군가는 영어로 자신을 표현한다.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처럼 외국어 학습자들은 다양한 언어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외국어 교육의 핵심 목표다. 


4. 언어를 소통에 앞서 표현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철학은 80년대 이후 전세계 외국어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의사소통중심교수법(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 CLT)의 철학과 대비된다. 사실 필자도 학부에서 교수법 과목을 수강하기 전까지 침묵교수법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심지어 중간고사 시험지에도 별 주목을 받지 못 하는 신세였다. 이제 침묵 교수법은 조용히(silently)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목표의 방점을 표현 쪽으로 조금 이동시켰을 때 외국어교수학습이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타인과 소통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확장하는 언어교육'이라는 표어가 불러내는 영감을 찾아보면 어떨까.


5. '침묵 교수법'과 함께 반짝 조명을 받다가 거의 사라진 교수법으로 '커뮤니티 언어 학습(Community language learning, CLL)'이 있다.


6. CLL을 주창한 Charles Curran은 카톨릭 사제이자 심리학자로 로욜라 대학의 교수였다. 인본주의 심리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그는 Carl Rogers의 인간중심치료(person-centered therapy)의 원리를 제2언어습득에 거의 그대로 가지고 들어온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커뮤니티'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것이다. 수업의 과정이 결국 커뮤니티를 짓는 과정인 것이다!


Photo by Shane Rounce on Unsplash


7. 심리상담을 인간 대 인간의 전인적 만남으로 보고, 내담자의 말에 지속적인 공감적 이해를 표하며, 긍정적인 관심을 놓지 않는 인간중심치료의 관점을 교실에 적용한다는 이상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상담자-내담자가 1:1로 소통하는 시공간에서도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교실 상황에서 이루기 힘들다는 단점은 명확하다. 

8. 무엇보다 인간중심상담/치료의 관점은 제도화된 교육과정을 전제로 하는 현대의 교실 맥락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될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고부담의 표준화 평가까지 고려한다면 인간 대 인간의 전인적 만남과 온전한 공감적 이해라는 목표는 힘을 잃고 만다. 


9. 참고로 칼 로저스가 제안한 인간중심치료의 원리는 아래와 같다. (자세한 것은  Wikipedia의 Person-centered Therapy 항목 참고.)


1) Therapist–client psychological contact

2) Client incongruence

3) Therapist congruence, or genuineness

4) Therapist 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5) Therapist empathic understanding

6) Client perception


https://en.wikipedia.org/wiki/Person-centered_therapy 


10. 이 외에도 Desuggestopedia와 TPR(Total Physical Response)은 '마이너' 교수학습 방법론으로 언급되곤 한다. (언젠가 계속)


덧1. 언어교육의 목표가 의사소통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여기에는 언어가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진화되었고 점차 정교해져 왔다는 암묵적 가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견해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의 노엄 촘스키는 언어는 진화과정의 돌연변이(mutation)에 의해 출현하였고, 이에 따라 인간은 구조화된 체계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계획, 해석 등과 같은 사고(thought)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즉, 촘스키에게 있어서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고의 도구이다. 


그가 지금도 이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주제와 관련된 페이퍼를 함께 썼던 당시 하버드대의 교수 Mark Hauser가 연구부정에 휘말렸고, 이에 따라 교수직에서 물러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부정은 지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지만, 대학 당국의 조사에 대한 그의 답변에는 그저 비겁한 변명이라고만 볼 수 없는 구석이 있다. 


"Although I have fundamental differences with some of the findings in the ORI report, I acknowledge that I made mistakes. I tried to do too much, teaching courses, running a large lab of students, sitting on several editorial boards, directing the Mind, Brain & Behavior Program at Harvard, conducting multiple research collaborations, and writing for the general public. I let important details get away from my control, and as head of the lab, I take responsibility for all errors made within the lab, whether or not I was directly involved."


https://www.harvardmagazine.com/2012/09/hauser-research-misconduct-reported

덧2. 사진은 침묵 방법론의 창시자인 Caleb Gattegno. 커뮤니티 언어학습의 주창자인 Charles Curran은 사진을 찾기 힘들다. 몇몇 파워포인트는 Curran의 사진을 첨부했는데, 그 Curran은 이 Curran이 아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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