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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 Oct 25. 2022

관사를 공부하고 삶을 말하기

'a'와 'the', 그리고 무관사의 세계로 본 특별함과 탁월함


"어렸을 땐 특별함과 탁월함을 헷갈렸던 것 같아요."


- "둘은 어떻게 다른가요? 일단 탁월한 건 예술이나 학문, 스포츠 등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거 같은 건가요?"


"네 맞습니다."


- "그럼 특별함은요? 탁월함과 어떻게 구분되죠?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들이 특별한가요?"


"지금으로서는 제 가족들이 제일 특별한 것 같습니다."


- "아, 그렇군요. 그럼 다르네요. 성취냐, 관계냐. 좀 단순화시켜 말하면요."


"네, 딱 맞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제가 과제에 썼던 거랑 관련이 되는 이야기인데요. 이제껏 탁월해지기 위해서 해왔던 일들을 보면 남들과 다 똑같은 거더라고요. 남들이 하는 대로 하기, 근데 거기에서 좀 더 잘 하려고 하는 거요. 그에 비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했던 노력은 사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 (끄덕끄덕) "그러네요. 탁월해지기 위해서 먼저 공부도 하고, 학원도 다니고, 필요하면 과외도 받고, 시험 대비도 철저히 하고. 대학에 올 때까지는 그렇게 사는 경우들이 많죠."


"네. 근데 그렇게 탁월하기 위해 사는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어요."


- "말씀하신 것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약간은 클리셰같은 장면이지만 <Before Sunrise>의 한 장면이 기억나네요. 줄리 델피는 멋지게 살아가고 싶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아닐까 이야기하죠. 에단 호크는 자신이 뭔가에 정말 뛰어난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요. 나중에 링크 드리도록 할게요. 


https://youtu.be/9jmZQcPoluc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4장 '영어 관사의 원리 이해하기'를 읽고 학생과 나눈 이야기입니다. 학생은 'a'와 'the', 그리고 무관사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오랜 시간 고민했던 '특별함과 탁월함'에 대한 단상을 꺼내 주었습니다. 저도 존경하는 한 선생님과 수년 전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주제이기에 무척이나 반가왔고요.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학생이 제출한 과제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학생의 허락을 받아 옮겨 놓습니다. 


관사를 배우고 'a'가 'the'가 되는 메커니즘을 이야기하면서 삶의 가장 큰 화두를 나눌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학생의 말 중에서 "이제껏 탁월해지기 위해서 해왔던 일들을 보면 남들과 다 똑같은 거더라고요. 남들이 하는 대로 하기, 근데 거기에서 좀 더 잘 하려고 하는 거요. 그에 비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했던 노력은 사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라는 대목은 두고두고 곱씹게 될 것 같습니다. 


<영어의 마음을 읽는 법>, 340쪽


<4장 '영어 관사의 원리 이해하기'를 읽고>


처음으로 “문법”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영어 공부를 했을 때, 내 눈에 가장 띄었던 파트는 이 “관사”파트이다. 관사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정관사가 붙어있는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최상급’과 같은 ‘특별한’ 표현들에 붙어있던 정관사가 멋지게 느껴졌다. 특별한 사람이 되길 원했던 나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특별함을 갖춘, 누구에게나 “고유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관사의 의미를 꽤나 오해하고 공부해왔던 것처럼, 나는 고유함, 특별함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었다. 불과 얼마전 까지도, “탁월한”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것이 특별하다고 믿었다. 세상에 뭔가 “고유하게” 남아있는 것들은 대게 “탁월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고, 내가 어렸을 때 배운 언어들은 “탁월함”이 특별하고, 고유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살면서 내가 했던 노력은, 고유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탁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노력들이 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두문제를 더 맞히고,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멋있어 보이는 취미를 즐기고, 그런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내가 나로서, 고유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특별해지기 위해서, 혹은 탁월해지기 위해서 했던 모든 노력들이, 사실은 평범해지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었고, 현실의 세상은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여러가지 이유로 벅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히려 고유함과 특별함은, 사실 내가 굳이 갖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고유한 사람이다. “탁월하다.”는 그 정의상 인구 중 소수의 사람만 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탁월하지 않은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유하고 특별하지 않을까? 탁월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들에게서, 혹은 나에게서 무슨 자격을 가지고 오만하게 고유함과 특별함을 빼앗았는가? 나의 오만함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제도화된 사회에서, 마치 공산품과 같은 교육을 받고 사는 현대 사회의 학생들은 일정 나이가 되기 전까지 그리게 되는 삶의 궤적이 서로 매우 비슷하다. 교단에 선 선생님들도, 봐야할 눈치와 현실적인 여건들에게서 눈을 돌리기 힘들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비슷한 길을 걸어가도록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길을 걸으며, 너무나도 평범한 나의 고유함을 지키기 위해, 탁월하게 살도록,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 길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인상적인 구절 중 하나는, 표본이 있기 전에 평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체의 특성이 파악된 이후에 그 집단의 특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평균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살면서 우리가 자주 잊고 살고, 그래서 많은 행복을 놓치게 되는 원인이 아닐까 싶다.


SNS가 보편화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기 쉬워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평균치가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비교하여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SNS 등지에서 발견되는 밝은 모습은, 어찌 보면 그 사람의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밝은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표본도, 독립변수도, 종속변수도 알 수 없는 가상의 평균치를 만들어내어, 자신의 삶과 자신의 행복, 능력과 같은 것들이 그들과 견주어 뒤쳐지지 않을 정도가 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탁월함”이 주는 행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들과 견주어 어떤 분야에서 탁월하다는 것은, 때로는 내게 재능이 있음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대게는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에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그것이 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클 때가 많다. 현실의 어떤 목표들은, 또한 남들보다 탁월해야만 달성 가능한 경우도 있다. 다만, 그것에 강박적으로 목을 메어가며 “탁월함” 자체를 목적으로 살아가고, 그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고유함을 깔아뭉개는 그런 오만한 삶을 사는 것을 지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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